사랑의 매는 없다 - 폭력과 체벌 없는 어린 시절을 위하여
앨리스 밀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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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것이 18년 지났다. 세상이 서너 번 뒤바뀔 시간을 근무했지만, 생각해보면 학교는 안 바뀐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곰곰 생각해 보면 많이 바뀌기도 했다.

'인권'이란 개념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예전처럼 툭하면 걷어차고 몽둥이 찜질을 하는 일은 드물고, 학생을 괴롭히는 부적격 교사들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나도 학교라는 제도에 참으로 불만이 많았던 학생이었던 모양이다.

그랬는데, 내가 학생부 선생이던 시절, 나도 참 아이들을 많이 때렸다. 학생부 교사는 일정 정도 악역을 담당해야 하고, 특히 학생들을 조사할 때 아이들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런 생각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학교에 배당된 외국어 강사가 내가 학생 뺨을 때렸다고 와서 마구 말린 적도 있다.

한동안 아이들이 맞는다고 경찰차가 학교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학교 현장에서 폭력의 매는 사라져 가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의 매'도 줄어들고 있다. 과연 '사랑의 매'는 있을까?

나는 문화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매는 '폭력적인 수준'의 것이지, 말을 알아듣는 아이에게 규칙을 알려주고 '찰싹' 손바닥을 때리는 정도의 매는 결코 치욕스럽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의 많은 이론들을 배우다 보면, 독자들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적 갈등이 생길 때 여러가지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서 살아날 길을 모색하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질병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문제다.

이 책의 원리는 단 한가지다.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것. 그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렇지만, 폭력을 낳은 많은 원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임을 이 책은 놓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아동 학대를 심각하게 다루는 SOS란 프로그램이 있어서 가끔 봤는데, 경제적 궁핍이 알콜 중독을 낳고,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우리의 정신은 폭력을 잊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몸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학생 시절이나 군대에서 겪은 '폭행의 추억'이 권력자를 폭력행위자로 만들듯이, 폭력의 문화는 폭력을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다.

불안감을 통해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불안감 뿐'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의 가치라고 한다면, 폭력을 통해 배우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가르칠 때 '사랑'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시도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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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1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글샘님이 학생 뺨을 때린 적이 있다니, 상상이 안 되네요.
중고교 때 그런 선생님이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치욕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저도 사랑의 매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이런 생각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달팽이 2007-02-1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매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들어보면 늘 습관이 되기 쉽거든요.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일년에 몇 번씩은 매를 대거든요.
반성합니다. 하지만 매를 댈 때 마음만은 이 녀석이 이 매 맞고 바른 마음으로 친구와 잘 지내기를.. 하는 발원을 하도록 노력합니다.
매는 어쨌거나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하지만 더 사실은
"꽃으로 때려도 폭력일 때가 있고
망치로 때려도 사랑일 때가 있다."는 말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글샘 2007-02-1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가능한한 학생부에는 안 있으려고 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생기겠지요. 학생부는 일종의 경찰 역할이라, 아이들 야단칠 일이 정말 많습니다. 정말 무서운 아이들도 많거든요^^ 세상이 더 좋은 쪽으로 바뀌어야 할텐데요...
달팽이님... 아이들과 약속하고, 안지키면 한두대씩 맞는 걸 남자아이들은 훨씬 좋아하지요. 두고두고 혼내는 거보다는... 아이들을 툭툭 건드리고 머리 쓰다듬고 하는 걸 저도 좋아하는데요, 아이들도 만져주면 좋아하는 것 같애요. 근데 가끔은 싫어하는 아이도 있고... 무엇이든 과유불급이겠지요.

해적오리 2007-02-16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서 아직 안 읽었는데 책을 보기 전에 님의 서평을 먼저 보게 된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드네요. 잘 읽고 갑니다.

드팀전 2007-02-2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지요....2월 가기 전에 한번 뵙고 싶었는데..이거 쓸데없이 번잡한 일이 많아서 여유를 못내고 있습니다.3월 달은 선생님들이 바쁘신 계절이니 더 따뜻해져야 가능할까...^^ ...교육감선거다 학교안전요원이다 해서 교육청을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전교조 지부도 들락거리고... 선생님들 생각이 나더군요.
학교에서의 폭력을 사랑의 매라고 하는 것은 점점 더 동의할 수 없어집니다.아무리 좋은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다른 접근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폭력은 가장 쉽고도 전통적인 방식일 뿐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달팽이님의 고민은 인정하지만 결국 그것도 학교에서 어느 정도 폭력은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전제하에서 시작합니다.대신 그 범위와 또 그 의도의 순수성을 문제삼고 있는것이지요.느슨한 접근은 선생님의 감정적 체벌과 이성적(?)체벌 사이의 경계를 쉽게 무너뜨리게될 듯 보입니다.

학생들의 인권문제는 참 관심이 많이 가는 주제입니다...나름대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분들도 아이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아니 '학생답게'라는 이름으로 간과되는 분위기가 맞겠지요.현장에 계신 선생님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만...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통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비인간적인 입시 교육 하에서 당연한 귀결같기도 합니다만 거기에다가 모든 책임을 미루는 것 역시 현재의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 수 있기도 합니다.참교육 학부모회에서 학교교칙 분석을 통한 학교인권 보고서가 있었는데...(그다지 심층적이지는 않습니다만)...결국 과거 교육제도와 그에 익숙한 교육자들,그리고 학부모들의 고루한 생각이 교육을 우리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제도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샘 2007-02-2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 좀 지루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책입니다. 함 읽어보세요.
드팀전님... 저도 폭력에 대해서는 정말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만,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지면서 형식적 권위나마 무너져 버리는 것에 혼란을 겪고 있어 보입니다.
공교육이 사실은 '개인의 진학과 출세'를 위한 사교육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너무 욕심을 내선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한번에 하나씩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놓치는 일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