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참 우리 고전 6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 돌베개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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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루쉰의 편지에서 오늘을 박지원의 편지까지...
루쉰과 박지원은 좀 비슷한 면도 있는데, 이거 남의 사생활 엿보기에 맛을 들였다.

박지원의 글들을 읽노라면 그 스케일이 장엄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국가의 경륜을 한줌 모래알 같이 여겨 비웃던 허생의 그릇의 크기나,
통곡할 만한 자리를 알아볼 줄 아는 시원스런 사람의 면모를 보기 쉽다.

그렇지만 사적인 편지에서, 박지원은 자상하고 따사로운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역시 제목이다.
박지원의 숱한 편지글을 읽고서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를 뽑아낼 줄 아는 탁견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눈엔 '무람없다, 무상무도하다, 장차 어쩌려고 그러느냐?'하는 잔소리가 가장 인상적이다.
큰 스승은 놓치는 것이 없이 자잘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버지인 하느님께서는 무엇 하나 잊고 깜빡 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박지원의 사람됨이 크고 넉넉하다고 하나, 이런 잔소리에서 그이의 인간성이 오롯이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이 편지들은 안의 현감, 면천 군수를 지낼 때의 글들이다.
자잘한 나랏일로 바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참으로 섬세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박희병 선생의 글인데 왜 한문 풀이가 없을꼬 했더니, 뒷부분에 역시 원문을 붙여 두었다.

이 책의 백미는 역시 해제의 1문단이다.

연암 박지원은 한국 문학사상 굴지의 대문호다. 그는 특히 산문을 잘 썼는데, 글 솜씨가 워낙 빼어나 그의 산문은 마치 잘 빚은 항아리처럼 물샐틈없이 삼엄한 완정미를 보여준다. 연암의 글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반어적이고, 때로는 통렬하고 풍자적이며, 때로는 몹시 처연하고, 때로는 능청스러우며 심원하고, 때로는 근엄하고, 때로는 예리한 통찰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논리적이고 심오하며, 때로는 몹시 논쟁적이고, 때로는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사람의 글인 양 담담하고 명상적이며, 때로는 깊은 연민이 담겨 있고, 때로는 몹시 슬프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 다양한 면모의 기저부에는 세상 안팎에 대한 놀라운 반성력과 자기 응시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창조적인 형식과 의장 속에 깊은 사상을 담지해 내고 있으며, 사회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 더 나아가 나라와 인민에 대한 선비로서의 경세적 책임감을 견결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 박희병 선생님을 읽는 일은 그래서 즐겁다.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빅지원은 박희병 선생님 손에 와서 비로소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 요즘 우리 사회의 세태는 경박에 경박을 더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세태에 영합하여 일각에서는 연암을 마치 개그맨처럼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하다...(고미숙, 뜨끔하겠다.ㅋ) 연암의 글쓰기에서 그 고심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고 사려 깊게 음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연암의 조박이나 해타에 대해 환호작약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듯 하다. ... 적어도 연암의 산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득하기 위해서는 연암 정도의, 혹은 연암과 방불한 사유와 고심, 인문적 교양과 식견을 갖출 필요가 있을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 연암을 말한다는 건,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이 말이 좀 심하다면 중고등학생으로 고쳐도 상관없다. - 이런 글은 나나 쓰는 심한 욕설 비슷한건데, 야, 박희병 선생님 화 많이 나셨구나. ㅠㅠ) 이 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을 평하고 운위하는 꼴이 되기 쉽다. 아무리, 말을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고, 그래서 제 보고 싶은 대로 보면 그만이라고 강변할지라도, 적어도 학문하는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이건 연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때, 이 서간집을 만나 번역에 힘을 쓰신 것이다.
박희병 선생을 만나 박지원이 물만난 고기가 되어 거듭 출간되는 일에 혼자서 환호작약하는 경향이 있다. -,.-;;  나야, 뭐 초등학생 수준에서 박사과정 대학원생 평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니... ^^ 그래서 난 더이상 학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박희병 선생님께 혼나기 싫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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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3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박희병 선생의 연암글에 대한 평가가 매력적이네요...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글샘 2007-01-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편지글은 그저 그렇지요. 편지니까요. 소소하고 사소하고... 오죽하면 고추장 단지...까지. 근데 박희병 선생님이 들입다 까는 사람들, 초등..운운 하면서... 정말 싫습니다. 학문하는 자리에 온갖 퓨전 잡탕을 끌고 들어와서는 재미없는 책을 비싼 값에 제작해 내는 사람들이잖아요.

프레이야 2007-01-3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부터 우선 마음을 끕니다.
스승은 놓치는 것이 없는, 자잘한 사람...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서
큰것을 바라기 어렵다고 들리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 얼마나 충실한가
자문합니다. 연암의 글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를 읽었습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고, 이 책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

글샘 2007-01-30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업 시간에 문제집에 나온 글을 가르치다가 간혹 박지원의 글을 수십 번 읽는 일이 있는데요, 읽을수록 오묘한 맛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박지원을 전면적으로 읽으려 해도 역시 어려워요. 정민 선생님이나 박희병 선생님같은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면 가깝게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이 책은 참 다정다감한 박지원을 느낄 수 있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