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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지음 / 열림원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 데모꾼들이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환경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난 그런 사람은 참 속편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쩜 그렇게 사고가 단순명쾌할 수 있을까?
아마 그 사람의 두뇌는 직선으로 생겼을 것이다. 나처럼 오골쪼골한 꼬불랑 곡선이 아니라...
곰곰 살펴 보면, 환경은 자연의 다른 말이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이미 환경을 파괴할 능력이 생기기 전에도 있었던 것 같다. 물질에 대한 과학의 발전으로 오존층에 구멍이 생겼느니, 빙산이 녹아서 바다가 몇 센티미터 상승했다느니 하지만,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분이지, 인간과 자연이 별개가 아니었지 않은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처럼 유명한 것도 없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어서 자연에서 얼마나 멀어진 것인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씨는 환경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데모꾼들이 환경에 관심을 둔 예가 되려나?
땅에다 발을 붙이고 사는 일은 행복할 것 같다. 엊그제 타샤 할머니를 보면서 맨발로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이 참 부러웠다. 많은 날들을 질척거리는 진흙탕에서 생활할 수도 있지만, 맨발로 폭신한 흙을 밟는 일은 아름답지 않은가? 따가운 모래 사장에서 꼬물거리는 세모래가 파도에 쓸려 발가락 사이를 간지르는 느낌은 온 몸의 감각을 살아나 소리치게 하지 않는가 말이다. 유행성 출혈열을 조심하라고 하지만, 좀 널찍한 잔디밭에 가면 비스듬히 앉아 손바닥으로 이마에 챙을 대고 폼잡고 먼 곳을 응시하는 기분도 상쾌하고 말이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구에 콘크리트를 뒤덮고, 그 위로만 다니는 삶은 질컥거리는 진흙을 밟진 않지만 또 향긋한 풀향기의 매혹을 잊고 사는 일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만나는 아침 이슬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이던가. 그렇지만, 막히는 도로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일은 정말 도로아미타불이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삶을 살 시간이 없었다...는 말은 오쇼 라즈니쉬의 말이다. 맞다. 바쁘다는 핑계로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져 말단을 긁적거리며 살고 있는지...
살다 보면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앞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처음 그 자리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흙탕물을 맑은 유리잔에 한잔 가득 담아서
책상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전깃불을 모두 끄고
촛불을 하나 켭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말은, '나 자신'을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일이다.
결국 '영성 靈性'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를 아무 데도 얽매이게 하지 않고, 순수하고 허탄하게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아무 것에도 상을 내지 말 것.
흐르는 물이 여울에서 얽매이지 않듯이,
푸른 산이 녹음을 찐득거리게 잡고 있지 않듯이...
이 책의 마지막 구절,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우친 바대로 사는 것>에 동감이다.
인간이 직선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칼럼과, 인간이 만든 인조적 잔디밭의 폐해에 대한 글은 아이들에게도 읽힘직한 글들이다. 이 책의 글들은 짧으면서도 진한 원액이 담긴 허브차같은 깨달음의 순간을 날라다 준다는 점에서 활용할 점이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