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혼도와 페이비언의 즐거운 하루

누가 더 즐거웠을까?

피터 매카티 글, 그림 / 장미란 옮김 / 바다어린이

 

 




 

고양이 페이비언은 창가에서,

강아지 혼도는 마루에서,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서

색색 자고 있습니다.

 

 




 

"혼도야, 일어나. 놀러 가야지!"

혼도는 재미있는 곳에 놀러 갑니다.

 

 




페이비언은 집에 남아 있습니다.

 

 




도는 자동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혼도는 바닷가에서 친구랑 놉니다.

 

 




페이비언은 집에서 아가랑 놉니다.

 

 




혼도와 친구는 신이 나서 바다로 첨벙 뛰어듭니다.

 

 




페이비언은 어디론가 뛰어갑니다.

 

 




혼도는 친구랑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페이비언도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이제 혼도는 배가 고파요.

혼도는 물고기가 먹고 싶어요.

 

 




페이비언도 배가 고파요.

페이비언은 칠면조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요.

 

 




드디어 혼도가 돌아왔습니다.

어서 저녁밥을 먹어야지요!

 

 




혼도와 페이비언은 사이 좋게 저녁밥을 먹습니다.

 

 




혼도와 페이비언은 배가 부릅니다.

이제 늘 자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혼도야, 잘 자."

"너도 잘 자."

 

 




"아가도 잘 자!"

 

 

 

햇살이 따뜻한 곳에서 읽으면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은 책이죠?
짤막짤막한 글임에도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누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천적이라고 했을까요?
여기서는 너무 다정해 보이기만 하는걸요.
그림도 너무 예뻐요.
전 그림을 보자마자 크빈트 부흐홀츠를 떠올렸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부드러운 파스텔 그림이 서로 닮은 것 같아요.
파스텔은 선명하다기보단 은은한 느낌이잖아요.
그래선지 꼭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아기가 자기 전에 읽어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책은 저만 예쁘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나 봐요.
2002년에는 <뉴욕타임즈> 올해의 최고 그림책상과 2003년에는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했거든요.
(칼데콧상은 최우수상 1권, 칼데콧아너상은 우수상으로 1~5권이 선정됩니다.)

이책을 보고 나니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의자 위에 예쁘게 앉아 있는 페이비언이... 마치 "날 가지세요~." 하고 유혹하는 것만 같아요. ㅠ.ㅠ)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고양이는 요물이라는 집안 식구들의 반대로
아이가 태어나서는 아이 건강에 해롭다는 반대로
이래저래 고양이와는 인연이 없는데요.

만화가 이우일씨네 집에 있는 너무나도 멋진 고양이 카프카가 순간 떠오르네요.
그럼 날 때부터 카프카와 함께 자란 은서는 어떻게 건강하단 말입니까!!!

참, 책 날개 뒷쪽에는 혼도와 페이비언의 진짜 모습도 볼 수 있답니다.
피터 매카티와 그의 아내 윤희, 딸 숙희가 실제로 키우는 애완동물들이거든요.
이름을 보니 우리 나라 분과 결혼하셨나 본데...
그렇다면 페이비언과 함께 놀던 아가가 숙희인가 봐요.
아무튼 오랫만에 따스한 감성의 그림책을 만나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혼도와 페이비언 둘 중에 누가 더 즐거웠는지는 여러분의 생각에 맡길게요! ^^

 

출처 : http://paper.cyworld.com/boo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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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넷 >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사진 이론의 역사]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사진 이론의 역사]

어떤 사진에 강렬한 ‘필’이 꽂히는 이유는
대부분 관습적 독해 코드로 이미지 읽기 … 메시지 담긴 사진 감동이 살아 있어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주체의 사라짐

마이클 스노, ‘Authorization-사진사의 초상’, 1969.

캐나다 오타와 국립미술관에 가면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 전시실 벽에 거울이 걸려 있고, 그 매끈한 표면 위에 다섯 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넉 장은 거울의 중앙에 함께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 한 장은 뚝 떨어져 왼쪽 상단에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진사가 거울 앞에 서서 폴라로이드카메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그는 텅 빈 거울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즉석에서 현상된 사진은 거울에 테이프로 표시된 사각형의 한쪽 귀퉁이에 붙여진다. 그것이 거울 속 사진사의 모습을 4분의 1가량 잡아먹는다. 이어서 같은 위치, 같은 각도에서 또 한 번 셔터를 누른다. 곧바로 카메라 밑으로 삐져나온 사진은 앞 사진의 오른쪽에 나란히 붙여진다. 이제 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모습은 절반이 가려졌다.

이어서 같은 방식으로 다시 셔터를 누른다. 이번 사진은 두 사진의 아래쪽에 배치되고, 이로써 사진사의 모습은 4분의 3이 사라진다. 이제 다시 그것을 찍어 남은 귀퉁이에 붙이면 테이프로 표시된 거울 위의 사각형에서 작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럼 이제 찍을 것은 하나뿐이다. 사진사를 집어삼켜 버린 넉 장의 사진. 그것을 찍은 마지막 사진은 거울의 왼쪽 상단으로 올라간다.

 

사진적 행위

“주체는 자신의 복제 때문에 점진적으로 매장되고, 언제나 이미 지나간 순간을 고착시키는 재현에 의해 각각의 조준과 촬영 순간마다 조금씩 삼켜지고 지워진다.” 여기서 “주체는 사진적 행위에 의해, 그리고 그 행위 속에서 완전히 용해된다.” 주체가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작가의 얼굴을 집어삼킨 다섯 장의 사진으로 표상되는 것, 즉 사진을 찍는 이미지 행위(image-acte)뿐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즈,‘시녀들’, 1656.

‘사진적 행위’에서 필립 뒤바는 이 작품에 자신의 논지 전체를 암시하는 ‘상징의 역할’을 맡긴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을 에피스테메론의 엠블럼으로 삼아 그것을 회화의 회화, 즉 고전주의적 표상의 표상으로 규정한 바 있다. 뒤바 역시 이 캐나다 작가의 작품을 사진의 사진, 즉 사진 찍기의 사진으로 푼다. ‘Authorization-사진사의 초상’(1969)이라는 제목은 ‘작가에게 권한을 부여한다’고 말하나, 정작 작품에서 사진사는 점차 지워진다.

이는 물론 당시에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 부르고, 탈근대 철학자들이 ‘주체의 죽음’이라 불렀던 것의 사진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미학에서는 예술가를 타고난 ‘천재’로 보든, 아니면 후천적인 ‘장인’으로 보든 작품을 작가의 주체성의 표현으로 보았다. 하지만 현대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을 ‘영매’로 간주하곤 한다. 이 경우 작품은 작가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사건의 성격을 띠게 된다.

 

실재의 거울

뒤바는 이 작품을 작가의 주관성의 표현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의 작동(une mise en acte)으로 본다. 이는 물론 진리의 발동(ins Werk Setzen)이라는 하이데거의 개념을 불역한 것이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그린다’는 행위 자체다. 뒤바 역시 스노의 작품에서 작가를 지우고 그것을 ‘찍는다’는 행위로 환원시킨 뒤, 이제까지 사진 이론에서 그 행위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해왔는지 추적해 들어간다.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 ‘포토제닉 드로잉’, 1840.

사진 이론의 역사를 재구성하려면 먼저 퍼스의 기호학을 알아야 한다. 퍼스는 기호를 크게 도상, 지표, 상징의 세 가지로 나누었다. 도상(icon)은 흔히 보는 그림처럼 ‘유사성’을 토대로 한 기호. 지표(index)는 남편의 와이셔츠에 묻은 루즈가 그의 바람기를 의미하듯이 ‘인과성’을 토대로 한 기호. 상징(symbol)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처럼 지시 대상과 아무런 유사성이나 인접성 없이 그저 관습과 협약에 따라 사용되는 ‘무연성(無緣性)’의 기호다.

사진도 일종의 기호라면,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가? 처음에 카메라가 발명됐을 때 당장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진이 현실을 빼어나게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사진은 현실을 쏙 빼닮은 도상기호였다. “사진과 영화는 그 속성상 사실주의의 강박관념을 충족시켜 준다.” 현대 회화가 재현의 과제를 사진에 넘겨주고 추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19세기 사진 이론에서 사진은 무엇보다도 ‘실재의 거울’이었다.

 

실재의 변형

하지만 우리는 이게 얼마나 소박한 생각인지 잘 알고 있다. 사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변형해서 보여준다. 루돌프 아른하임에 따르면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이미 관습적 도식, 즉 문화적으로 형성된 지각의 코드를 적용한다. 인류학의 연구 역시 문명 이전 사회에 사는 부족들은 종종 사진을 보고도 이해를 못한다고 보고한다. 이 역시 사진의 바탕에는 해독을 위해서 따로 배워야 할 어떤 관습적 코드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게다.

사진은 거울처럼 실재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게 아니라 대개는 현실을 변형시켜 제시한다. 가령 지난번에 본 로젠탈의 사진은 연출된 장면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굳이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아도 사진이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건 아니다. 무엇을 찍을까, 어떻게 찍을까를 결정할 때부터 이미 사진 속에 찍히는 세계는 찍는 사람의 머릿속의 관념에 따라 변형되게 마련이다. 사진은 세계의 그림이기 이전에 그것을 찍는 이의 머릿속 그림이다.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 ‘포토제닉 드로잉’, 1840.

이 때문에 ‘카이에 뒤 시네마’ 그룹에서는 사진의 바탕에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고 보았다. 사진은 그림이기 이전에 관념이라는 것이다. 사진이 일종의 감추어진 텍스트라면, 그것은 도상기호가 아니라 상징기호가 되는 셈이다. 20세기 초의 사진 이론은 사진을 세계의 거울이 아니라 ‘실재의 변형’으로 보았다. 사진은 세계를 찍는 이의 관념에 맞게 세계를 변형시켜 제시한다. “글자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이 될 것”이라는 베냐민의 언급도 이와 관련이 있다.

 

실재의 자국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 사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등장한다. 이미 루돌프 아른하임은 “물리적 대상들은 그들의 이미지를 빛의 광학적, 화학적 반응을 통해 스스로 자국으로 남긴다”고 말한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진은 도상기호가 아니다. 사진기는 현실을 재현할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반사광과 감광물질 사이의 광학적, 화학적 인과관계뿐이다.

이는 특히 포토그램에서 잘 나타난다. 탈보트는 피사체를 인화지 위에 올려놓고 바로 현상하는 ‘포토제닉 드로잉’을 선보였다. 만 레이 같은 예술가도 비슷한 작업을 남겼는데, 그는 여기에 ‘레이요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잘린 크라우스의 말대로 “포토그램은 모든 사진에 적용되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거나 명확하게 한다. 모든 사진은 빛의 반사에 의해 감광면 위로 이동된 물리적 자국의 결과다.”

   


로버트 카파, ‘인민전선 병사의 죽음’, 1936.

물론 사진은 분명히 사물과 사람을 닮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물리적 효과, 즉 사실적인 모방 개념과 상관없는 빛 자체의 물질효과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무엇보다도 그 본성상 지표기호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사진은 실재의 거울, 실재의 변형을 거쳐 마침내 ‘실재의 자국’이 되었다. 이렇게 20세기 후반에 사진 이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 ‘카메라 루시다’다.

 

스투디움과 푼크툼

우리는 사진의 의미를 독해할 수가 있다. 가령 흑인 장교가 프랑스의 삼색기에 경례를 하는 사진이 있다고 하자. 거기서 우리는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즉 ‘조국 프랑스는 피부 색에 상관없이 누구나 프랑스군의 장교로 받아들인다. 삼색기는 우리 모두의 조국이며, 그 아래서 피부색이 다른 우리 모두는 하나의 국민이다.’ 이때 그 사진은 프랑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시각적 표현이 된다.

만 레이, 레이요그래피 ‘키스’, 1935.

이렇게 사진을 읽을 때 관습적으로 동원되는 독해 코드를 바르트는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부른다. 스투디움에 대해 무지할 때 우리는 사실상 문맹자가 되어 사진 속 이미지를 그대로 세계의 거울로 생각하는 주술적 의식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사진의 의미를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투디움을 이해해야 한다. 이로써 사진은 상징기호가 된다. 하지만 사진의 본질이 과연 그런 일반적인 해석의 틀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 어떤 사진을 볼 때, 그 모든 의미의 해석에 앞서 이른바 ‘필이 꽂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전선의 병사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포착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생각해보라. 이런 강렬한 체험을 일으키는 것은 그 사진의 의미를 읽게 해주는 ‘일반적’ 해석의 틀이 아니라 그 사진의 ‘개별적’ 존재가 찌르는 고유한 효과다. 이는 곧 사진이 우리 신체에 남긴 ‘자국’이라 할 수 있다. 이 촉각적 효과를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이라고 부른다. 사진의 진정한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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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법 아이 성격 따라 달라요

[내일신문 2006-04-14]

 

홍현주·최영주 박사가 조언하는 ‘맞춤 영어교육법’

영어 공부도 아이 성격에 맞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영어교육학 박사인 홍현주 씨와 심리학 박사 최영주 씨가 그들. 아이 성향을 잘 아는 부모야말로 가장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그들에게 내 아이 성향에 맞는 영어교육법을 벤치마킹해보자.

대한민국 엄마들은 똑같은 꿈을 꾼다. ‘제발 우리 아이 영어 좀 잘했으면’ 하는 꿈이다. 바람이 큰 만큼 영어 정복에 대한 해결책도 가지가지다. 그런데 성공적인 영어 공부법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이의 성향과 상황에 맞는 맞춤 영어교육이라는 점이다.

영어교육컨설팅 벤처 회사 세쿼이아를 운영하는 홍현주(영어교육학), 최영주(심리학) 박사는 “영어 공부에 앞서 아이 성격과 능력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아이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부모야말로 가장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며, 또 영어 실력이 좋은 엄마만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다소 안심되는 말도 들려주었다.

홍현주 박사는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국내 대학과 미국 현지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그 실전 경험을 담아 ‘초등 6년 영어 관리법’이란 책도 펴냈다. 이론에서뿐 아니라 현장에서 5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면서 그가 깨달은 사실이 ‘아이 성격에 따라 교수법을 달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 그의 이 같은 지론은 최영주 박사를 만나 더 힘을 얻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가 내 아이의 모든 면을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라고 세상 모든 일을 엄마와 소통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알고 있다고 믿는 거지요. 이런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성 검사나 성격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최영주 박사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가 적성 검사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 덧붙인다. 너무 어린 나이에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 자라면서 성격이 바뀌는 수도 있고 검사 자체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한 학교의 상담 교사나 대학 부설 심리 연구소 등을 이용하면 된다.

“여성 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하버드나 MIT에 간 대단한 아이들은 내버려두어도,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영어를 잘할 아이들입니다. 문제는 누가 참견하고 다잡지 않으면 책을 거들떠도 안 보는 아이, 영어라면 도리질부터 치는 아이들입니다.”

과잉행동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 가운데는 산만한 아이들이 많다. 홍 박사는 이런 아이에게는 엄마도 같이 산만해져서 산만하게 영어를 가르치라는 다소 재미있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산만한 영어 공부란 집 전체를 공부방으로 활용하는 것. 방은 리스닝룸으로 꾸며 하루 종일 영어 테이프가 돌아가도록 해둔다. 거실은 손이 닿는 곳곳에 책을 두고 리딩룸으로 삼는다. 화장실에는 영어 단어를 써서 붙여두고 양치질하면서, 볼일 보면서 단어를 욀 수 있게 하고, 아이 방에도 영어 단어와 문장을 써서 붙여둔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방법도 있다. 수준이 다른 두 권의 책을 선택해 쉬운 책은 아이가 스스로 읽게 하고, 어려운 책은 엄마가 읽어주거나 테이프로 듣게 해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교수님도 이와 비슷한 공부법을 실천하시더군요. 그분은 본인 스스로 무척 산만하기 때문에 방 양쪽 끝에 책꽂이를 만드셨대요. 책 한 권 꺼내 들고 방 안을 가로지르며 읽다가 맞은편 서가에 꽂아두고, 거기서 또 새로운 책을 꺼내서 읽고. 이렇게 걸어 다니며 책을 읽으셨대요.”

홍 박사의 이야길 듣고 보니 산만한 아이를 공부시키려면 공부는 모름지기 바른 자세로 앉아서 집중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부터 버려야겠다.

◆사교적인 아이가 영어 더 잘해 = 최 박사에 따르면 명랑 소년, 소녀들은 항상 생각과 행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간혹 행동부터 하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명랑 소년들은 얼핏 보기에 엄청 영어를 잘하는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브로큰 잉글리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 먼저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사교적인 분위기에서 영어를 더 잘 배운다. 학원에 보내 가장 효과가 큰 것도 이런 아이들이다. 학원에서 또래와 영어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잘못된 영어를 고칠 수도 있다. 하루 10분 집중 듣기 시간도 필요하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키워드를 빈칸으로 비운 다음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문장을 완성하게 하는 방법. 실력이 좀 향상되면 듣고 받아쓰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읽기를 연습시킬 때도 과거형 어미-ed, 복수형 어미-s, 3인칭 단수 어미-s 등 얼렁뚱땅 넘기기 쉬운 부분을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치게 하면서 책을 읽힌다.

◆내성적 아이, 대화체 많은 동화책이 효과 =성격상 수다는커녕 말수도 별로 없는 아이들. 이런 성향의 아이들은 본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영어 공부를 할 때도 읽기나 쓰기는 곧잘 해내지만 말하기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각본을 써보도록 한다. 먼저 대화체가 많은 동화책을 고른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가며 스토리가 이어지도록 적는다. 스토리가 완성되면 엄마, 친구, 동생과 역할을 나눠 대사를 읽어본다. 좀 익숙해지면 연극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런 아이들 말 좀 하게 만들려고 외국인 회화반에 집어 넣어보아야 수다스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치이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영어 회화에 대한 미련 버리기 힘들다면 차라리 회화책을 읽히는 편이 낫다. 이런 아이의 특징은 어느 순간이 되면 저절로 말문을 여니 참고 기다려야한다. 다그치는 것은 절대 금물. 닦달할수록 아이는 더욱 입을 다물 것이다.

◆문제풀이도 효과적 학습법 = 영어뿐 아니라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많은 아이들이다. 영어 공부에 대해서도 자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성격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문제 풀이로 영어공부를 시키면 경쟁심을 더욱 부채질하는 격이라 공부 효과가 높아진다.

“이런 아이들은 따로 회화책을 살 필요가 없어요. 일단 문제집을 풀게 합니다. 그다음 문제를 가리고 답만 보여주면서 이 대답이 나올 만한 질문을 만들어보게 합니다. 이게 바로 회화 공부죠.”

이런 아이는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지나친 경쟁심으로 다른 아이들이 말할 기회를 빼앗아버린다면 유창한 영어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 영어 공부에 앞서 매너를 가르쳐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아이들이다.

몇 가지 유형에 따른 공부 방법을 알아봤다. 그러나 어찌 수많은 아이들을 단 이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홍현주 박사는 “이를 참고해 우리 아이에게 적합한 공부법을 개발해야 한다. 끊임없이 꾀를 내어 영어를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수진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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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6-07-0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영어교육에 관심이 지대한(?) 부모님들에게 권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맞져?

프레이야 2006-07-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우리 딸 둘이 영어공부할 때보면 성격이 좀 다르다는게 보여요.

2006-07-0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6-07-0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도 이제 시작인데 참고해야겠어요.

비자림 2006-07-0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는 이제 ABC 수준입니다. 호호
 
배탈고개 미네르바의 올빼미 11
김지용 글, 이영일 그림 / 푸른나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6월이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책을 학년별로 한 권씩은 읽게한다. 이 책도 그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동화이다. 배탈고개라는 이름에는 별다른 뜻은 없지만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의 가난에 목이 울컥 매인다. 이 책은 우선 표지에서부터 약간 어두운 느낌을 준다. 삽화가 마치 목판화 같은 인상을 주면서 어둡고 깊으며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의 내용도 그런 분위기를 시종 끌고 간다. 윗말과 아랫말은 남한과 북한을 빗대어 지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소작농이 주민의 대부분인 아랫말과 지주들이 사는 윗말. 그 사이에는 배탈고개가 있어 그곳의 너른바위에 올라앉으면 양쪽이 모두 시야에 훤히 드러난다. 해발로는 아랫말이 위쪽에 있는데 왜 이름은 아랫말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화자는 이야기한다.

이 동화의 화자는 아직은 어리다할 수 있는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의 남자아이다. 이 아이는 아랫말 봉구를 마냥 좋아하며 따라다니는 순수하고 정이 많은 성격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나중에는 어른스럽다 싶을 정도로 생각을 잘 해내는 부분이 조금은 과장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시종 이 아이의 눈과 입으로 전해지는 인물들의 행동과 말 그리고 마음이 진한 여운을 준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윗말의 최부자로, 아랫말 사람들이 모두 어르신이라 부르며 공대하는 사람이다. 땅을 소중히 여기고 소작인을 부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고지식하지만 연륜에서 묻어나는 생각의 품이 넓은 사람이다. 처음엔 소작인이 가난한 건 게을러서라고 단정짓는 사람이었지만 점점 변화의 조짐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마음의 고리를 푸는 인상을 준다. 아버지의 이런 마음은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조금씩 느껴진다. 결말에서는 넓고 묵직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가 가장 애틋한 마음을 품는 대상은 딸이다. 딸은 '나'의 하나뿐인 누이다. 누이는 아랫말의 봉필이를 사랑하지만 전쟁은 이들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누나는 전쟁 통에 목숨을 잃은 어머니를 빼다박은 말과 행동으로 아버지와 할머니를 놀라게 한다. 누나가 노심초사 속을 태우며 봉필이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아버지는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끝내 딸의 행복을 위해 땅을 내어놓는 대목이 감동을 준다.

5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었는데 하나같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느니 좀 지루했다느니 재미없다고 반응했다. 역사적 사건을 먼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이야기를 잘 맛보려면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읽어내야한다. 등장인물들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고 에둘러서 간곡하게 나오므로 그 심정을 헤아려가며 행동을 추론하지 않으면 이 책의 사건 전개가 뭐가뭔지 모르겠다는 식이 될 수 있다.

전쟁 전과 전쟁 중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의 인물들의 마음과 행동을 섬세하게 비교해보며 읽어야겠다. 이 책에서는 보통의 다른 전쟁동화처럼 전쟁의 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그보다 할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나' 그리고 봉필이와 봉구의 행동에서 전해지는 마음의 상처들을 느끼고 이해해보려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휴전이 된 지 53년이 흐른 지금, 배탈고개는 아직도 넘지 못하는 선으로 남아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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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6-07-0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집니다.
 
 전출처 : 동그라미 >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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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0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게 발자국 남기며 길을 잘 걷고 있는 배혜경님. ^^

프레이야 2006-07-04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감사해요. 이 아침에 이리 기운나는 예쁜 말 들려주신는 님~~
오늘도 신나는 하루 보내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