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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고개 ㅣ 미네르바의 올빼미 11
김지용 글, 이영일 그림 / 푸른나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6월이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책을 학년별로 한 권씩은 읽게한다. 이 책도 그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동화이다. 배탈고개라는 이름에는 별다른 뜻은 없지만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의 가난에 목이 울컥 매인다. 이 책은 우선 표지에서부터 약간 어두운 느낌을 준다. 삽화가 마치 목판화 같은 인상을 주면서 어둡고 깊으며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의 내용도 그런 분위기를 시종 끌고 간다. 윗말과 아랫말은 남한과 북한을 빗대어 지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소작농이 주민의 대부분인 아랫말과 지주들이 사는 윗말. 그 사이에는 배탈고개가 있어 그곳의 너른바위에 올라앉으면 양쪽이 모두 시야에 훤히 드러난다. 해발로는 아랫말이 위쪽에 있는데 왜 이름은 아랫말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화자는 이야기한다.
이 동화의 화자는 아직은 어리다할 수 있는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의 남자아이다. 이 아이는 아랫말 봉구를 마냥 좋아하며 따라다니는 순수하고 정이 많은 성격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나중에는 어른스럽다 싶을 정도로 생각을 잘 해내는 부분이 조금은 과장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시종 이 아이의 눈과 입으로 전해지는 인물들의 행동과 말 그리고 마음이 진한 여운을 준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윗말의 최부자로, 아랫말 사람들이 모두 어르신이라 부르며 공대하는 사람이다. 땅을 소중히 여기고 소작인을 부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고지식하지만 연륜에서 묻어나는 생각의 품이 넓은 사람이다. 처음엔 소작인이 가난한 건 게을러서라고 단정짓는 사람이었지만 점점 변화의 조짐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마음의 고리를 푸는 인상을 준다. 아버지의 이런 마음은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조금씩 느껴진다. 결말에서는 넓고 묵직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가 가장 애틋한 마음을 품는 대상은 딸이다. 딸은 '나'의 하나뿐인 누이다. 누이는 아랫말의 봉필이를 사랑하지만 전쟁은 이들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누나는 전쟁 통에 목숨을 잃은 어머니를 빼다박은 말과 행동으로 아버지와 할머니를 놀라게 한다. 누나가 노심초사 속을 태우며 봉필이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아버지는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끝내 딸의 행복을 위해 땅을 내어놓는 대목이 감동을 준다.
5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었는데 하나같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느니 좀 지루했다느니 재미없다고 반응했다. 역사적 사건을 먼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이야기를 잘 맛보려면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읽어내야한다. 등장인물들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고 에둘러서 간곡하게 나오므로 그 심정을 헤아려가며 행동을 추론하지 않으면 이 책의 사건 전개가 뭐가뭔지 모르겠다는 식이 될 수 있다.
전쟁 전과 전쟁 중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의 인물들의 마음과 행동을 섬세하게 비교해보며 읽어야겠다. 이 책에서는 보통의 다른 전쟁동화처럼 전쟁의 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그보다 할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나' 그리고 봉필이와 봉구의 행동에서 전해지는 마음의 상처들을 느끼고 이해해보려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휴전이 된 지 53년이 흐른 지금, 배탈고개는 아직도 넘지 못하는 선으로 남아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