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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동그라미 > 국화/ 안상학

국화

안상학

올해는 국화 순을 지르지 않기로 한다.
제 목숨껏 살다가 죽음 앞에 이르러
몇 송이 꽃 달고 서리도 이슬인 양 머금다 가게

지난 가을처럼
꽃 욕심 앞세우지 않기로 한다.
가지 잘린 상처만큼 꽃송이를 더 달고
이슬도 무거워 땅에 머리를 조아리던
제 상처 제 죽음 스스로 조문하던
그 모습 다시 보기는 아무래도 쓸쓸할 것만 같아

올해는 나도 마음의 가지를 치지 않기로 한다.
상처만큼 더 웃으려드는 몰골 스스로도 쓸쓸하여
다만 한 가지 끝에 달빛 닮은 꽃 몇 달고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슬픔을 위문하며
서리라도 마중하러 새벽 길 가려한다.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회원, 경북작가회의 부회장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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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3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04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1-0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월요일에 보낼 수 있겠어요. ^^
주말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래요^^

2006-11-04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0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동그라미 > 불혹의 구두/ 하재청

不惑의 구두

하재청

예고도 없이 불어닥친 바람
이미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낙엽은 더 이상 밟히는 존재가 아니다
동강동강 인화된 가을이
구두코에 부딪치며 몰려오던 날
그다지 바쁠 것 없는 귀가는
신발장에 버려진 낡은 구두처럼 고요하다
발뒤꿈치를 타고 가슴에 차 올라오는
먼 귀가길 모퉁이에 매달린 소용돌이
때론 먼지처럼 뚝뚝 피어나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현관문을 열다 뒤돌아보곤 한다
내가 걸어온 이정표가
골목골목 훤하게 적시는 순간
예정된 귀가는 늘 서툴고 불편하다
신발장 구석 낡은 구두가
허리 아픈 아내보다 먼저 인사를 한다
구두 속 갇혔던 하루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맞는다
그렇구나, 나를 맞는 하루의 시작이 지금부터구나
不惑을 넘긴 사람은 안다
저물녘이 고요에 젖어 흔들린다는 것을,
한 쪽으로 삐딱하게 닳은 구두 뒷굽이 나를 향해 휘청거린다
구두를 벗어 곧 살아 퍼덕일 내 하루를 신발장에 진열한다
낙엽에 할퀸 구두 뒤축
피 흘린 가을 몇 점.

-<시선> 2005 여름호


경남 창녕 출생
2004년 <시와 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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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6-10-3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춘천에 다녀왔어요.
마라톤하는 남편을 응원하러요.
서울과는 달리 단풍이 어찌나 곱게 들었던지 온몸으로 가을을 느끼고 왔답니다.

프레이야 2006-10-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마라톤 하는 옆지기님 응원하시며 단풍구경도 덤으로 하셨군요. 너무나 빛나는 시간이었겠어요. 가을 냄새도 물씬 나는 것 같아요. 전 어제 친구랑 '가을로' 봤는데 가을풍경이 아름다웠답니다.^^
 
 전출처 : 비자림 > 의자, 이정록

의자

                   이 정 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개 내 놓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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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6-10-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얼마만큼 더 살아야 이런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걸까요? 좋아서 저도 퍼 갈게요.

프레이야 2006-10-25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마음을 넉넉히 하며 사는 일, 저도 언제나 도달할 수 있을런지요.
오늘도 화사한 하루 보내시기 바래요^^
 
 전출처 : 토트 > 느린 달팽이의 사랑 - 유하

느린 달팽이의 사랑

 

달팽이 기어간다
지나는 새가 전해준
저 숲 너무 그리움을 향해
어디쯤 왔을까, 달팽이 기어간다.

달팽이 몸 크기만한
달팽이의 집
달팽이가 자기만의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먼 곳의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걸
그가 잘 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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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조병화 - 내 몸의 열매들


            내 몸의 열매들
                                            - 조      화 -
                  지금  나의  몸은  가을로  한창이다
                  지나간  세월들이  세월대로  익어
                  제자리,  제자리,  가지,  가지
                  주렁주렁 열매들을 매달고 있다
                  혼자서  익은  열매
                  같이  익은  열매
                  쭉정이로  익은  열매
                  벌레로  익은  열매
                  지금  나의  몸은  가득히
                  알알이  익은  열매로
                  떠날  채비를    가을로  한참이다
                  빨리  서두는    겨울  앞에서
                  사는  거만큼  익어,  드리는    열매들
                  어머님,  너무나  죄송하옵니다.
                  그  중의  하나만은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이옵니다.
                                제30시집외로운 혼자들(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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