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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惑의 구두
하재청
예고도 없이 불어닥친 바람
이미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낙엽은 더 이상 밟히는 존재가 아니다
동강동강 인화된 가을이
구두코에 부딪치며 몰려오던 날
그다지 바쁠 것 없는 귀가는
신발장에 버려진 낡은 구두처럼 고요하다
발뒤꿈치를 타고 가슴에 차 올라오는
먼 귀가길 모퉁이에 매달린 소용돌이
때론 먼지처럼 뚝뚝 피어나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현관문을 열다 뒤돌아보곤 한다
내가 걸어온 이정표가
골목골목 훤하게 적시는 순간
예정된 귀가는 늘 서툴고 불편하다
신발장 구석 낡은 구두가
허리 아픈 아내보다 먼저 인사를 한다
구두 속 갇혔던 하루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맞는다
그렇구나, 나를 맞는 하루의 시작이 지금부터구나
不惑을 넘긴 사람은 안다
저물녘이 고요에 젖어 흔들린다는 것을,
한 쪽으로 삐딱하게 닳은 구두 뒷굽이 나를 향해 휘청거린다
구두를 벗어 곧 살아 퍼덕일 내 하루를 신발장에 진열한다
낙엽에 할퀸 구두 뒤축
피 흘린 가을 몇 점.
-<시선> 2005 여름호
경남 창녕 출생
2004년 <시와 사상> 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