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한옥마을 안에 조촐하게 앉은 이상의 집.
신년초의 늦은 오후, 누군가 대금 한자락을 풀고
있었다. 이상과 이상의 작품 관련한 책들이 한쪽 벽면
선반에 꽂혀 있고 사람들은 자유로이 세 가지 공간에
속해 있다. 크지 않은 실내, 흑백사진들이 걸린 마당,
육중한 철문을 열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뻥 뚫린 공간. 그것에 우뚝 서면
하늘 아래 기억 자를 그리는 기와 지붕 그리고 마당이 조감도처럼 펼쳐진다.
李箱에게 헌사하는 방이라고 적힌 좁은 이곳은
방이라기보다 하나의 출발점 혹은
하나의 상자 같은데
거기서 고개를 들면 마치
날개가 돋아나기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왠지 무서운 공간이었다.
내려올 때 계단은 왜 그리 또 어두운지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다행히 발목을 다치진 않았지만.


- 사람들은 누구나 평생에 단 한 번은 그렇게 날아오르지 않는가? 자신의 운명을 알아버린 얼굴 하얀 아이도, 자기가 온 것을 알아버린 낯선 아이도. 누구나 한번은 그렇게 날아오르지 않는가? 부러진 날개로, 우리는 모두 한번은 날아오르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닌가?

/ 김연수, 꾿빠이 이상 p280


김연수 2001년 동서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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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8-02-03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촌은 가봤어도 서촌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네요.ㅠ 다음에 서울가면 꼭 둘러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8-02-03 08:31   좋아요 0 | URL
서촌 구석구석 소소하게 가볼 곳 많아요. 서촌 지도가 길가 입구에 있으니 보시면 꺅~하실 거에요^^ 아담한 카페도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