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복어를 먹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복어가 아니다, 독이 빠진
복어는 무장해제된 생선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
요릿집이 있다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독을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 고수가 먹는 것이 진짜 복어다
맛이란 전부를 먹는 일이다
사는 맛도 독 든 복어를 먹는 일이다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의 맛
그 하나라도 독처럼 먹어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사는 맛도
독이 빠진 복어를 먹고 있을 뿐이다

- 사는 맛 / 정일근



어제 저녁 운전을 하며 광안리를 지나다 배미향 님의 둥근 목소리로 이 시가 흘러나왔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철학강의에서 만나 알게된 언니가 울산에 계신 정일근 시인에게 시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분의 시집 두 권을 주었다. 제대로 읽어보질 못했는데 다시 펼쳐봐야겠다. 시를 배울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또 배우고 싶은 점이라. 그 언니와는 무슨 이유로 만나지 않게 되었는데 이 시 덕분에 뾰족한 순간의 그때가 떠오른다. 함께 황산 여행까지 갔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마음을 다쳤고 돌아와 결별했다. 서로 결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똑같아서 서로 부담스러웠겠지. 어제 아침 어떤 일로 또 격분해 울먹이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현명한 친구가 부드럽게 충고해 준 것처럼 흘려듣고 흘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게 잘 안 되는 사이라면 소중한 대상이었다는 건데 비슷한 경우들을 생각해보면 그래서 다시 마음이 아프다. 자연스레 인연의 문제로 편하게 흘려보내자 생각하면서도.
삶의 고수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다. 부족한 사람이니 그냥 나는 중수쯤으로라도 잘살아내길. 오늘은 출판사에 가서 마무리할 일이 있고 점자도서관 강의와 녹음봉사 등 일 보러 나가야되는데, 갑자기 추워진 것 같다. 여름옷만 보이네 ㅎㅎ 옷정리도 안 하고 겨울을 맞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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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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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1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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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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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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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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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0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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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2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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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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