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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아빠되기>
아이 사랑에도 ‘뜸 들이기’ 필요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
요즘은 생경한 말이지만 보릿고개란 1960년대 배고픔의 대명사였다. 봄이 되면 쌀은 다 떨어지고 기대할 것은 보리가 빨리 익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쌀이란 과잉생산으로 농민의 한숨소리가 섞여있고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길든 아이에게는 천덕꾸러기가 된 듯하다. 밥을 싫어하는 아이가 점점 늘고 있다. 그래서 엄마들의 걱정이 많다. 심지어 밥을 들고 쫓아다니는 일도 있다. 물론 아이를 사랑하는 정성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실마리는 늘 엄마가 제공한다. 식사 전에 충분한 간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통제력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일단 맛이 있으면 생각없이 계속 먹게 된다. 결국 간식으로 시작한 것이 식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과잉 사랑이 빚은 결과다. 그러나 간식을 많이 줄이거나 없애면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 밥을 잘 먹게 되어있다. 배가 고픈데 견딜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밥을 짓는 것도 노하우가 있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강력한 화력만으로 하다가는 3층밥이 되기 십상이다. 꺼질 듯, 말 듯한 약한 불과 약간의 기다림이 바로 밥맛을 만든다. 약한 불은 얼핏, 최선을 다하지 않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밥을 익게 하는 것은 강력한 불이지만 맛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뜸이다. 밥을 짓는 일조차 강약과 완급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며칠 전 주부 리포터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영화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의 남편은 쉬는 날이면 아이와 잘 놀아준다고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갔단다. 그러나 즉흥적인 출발로 인해 네 곳이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매진되어서 결국, 서점에서 책을 사주는 것으로 갈음했다고 한다. 물론 필자도 지난달 23일 아이들과 영화를 관람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이미 12월 초에 했고 캘린더에 표시도 했다. 아들은 일주일 전에 “아빠, 극장가는 것 잊으면 안돼요”라고 확인을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예매는 3일 전에 밤 11시로 했다. 영화가 끝나자 거의 2시, 찬 새벽공기를 마시며 잠에 취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란 반드시 잠자는 시간뿐 아니라 영화도 볼 수 있고 일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란 것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적극적인 양육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 때론 소탐대실이거나 언발에 오줌누기와 같은 상황도 벌어진다. 그러므로 무한한 사랑과 맹목적인 사랑은 자유와 방종처럼 구분되어야 하며 걱정과 기우(杞憂)도 살펴야한다. 필자는 한동안 아내에게 ‘뜸아빠’로 불렸음을 고백한다. 아내의 요구에 즉답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별명이 번개탄인 아내에게는 벅찬 일이며 아마 마음고생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필자의 저서인 ‘아빠의 놀이혁명’이 발간되자 그 별명이 사라졌다. 미묘한 그 간극을 이해했을까?

뜸이란 절제된 사랑이다. 받는 입장에서는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다. 뜸이란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전체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하기에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뜸이란 기다림의 미학이다. 그동안 엔도르핀이 다량 생성되어 흥행의 성공을 보장한다.

결국 아빠를 더욱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더구나 아이의 인성도 뜸들이는 밥처럼 자연스럽게 익어간다.

권오진 ‘아빠와추억만들기(www.swdad.com)’단장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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