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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을 시켜 먹는 저녁
어둠이 짙어오는 저녁 일곱시
나는 치킨을 시켜 먹을 것이다
치킨은 삼십 분이면 내 곁으로 온다
나를 염려하던 가족들 목소리도 가물가물하고
희뿌연 안개 속을 운전하는 것처럼 내 인생이 불분명할 때도
때만 되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내 안의 식욕
음식을 잊지 않는 징그러운 육체
치킨은 삼십 분이면 내 곁으로 온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나는 습기 찬 벽을 보며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다
퀴퀴한 주점 한구석에서 만나는 친구의 넋두리는
우리 모두의 넋두리였다
나는 그 넋두리가 몹시도 보고 싶었다
직장을 다녀도 헬스클럽을 기웃거려도
사람들은 어디든 많은데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
치킨은 삼십 분이면 내 곁으로 온다
남들은 애인 만들기도 쉽다고 하는데
출근 버스 안 무심한 표정의 사람들처럼
나의 삼십대는 만나도 만나도 친구가 되지 못한다
치킨은 삼십 분이면 내 곁으로 온다
오래 전에 나는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곱고 아름다운 눈동자들을 기억한다
어린 날 피어오른 산뜻했던 우정도 늙는 것일까
늙고 잊어버리고 사라지는 것일까
먹어도 먹어도 나는 배고프다
배고프다는 생각을 하는 내 몸은
자꾸만 시계를 노려보고
나는 그런 생각에 빠진 내 육체를 노려본다
저 녀석은 알고 있을까
나는 가끔 저 녀석을 벗어던지고 싶다
치킨은 삼십 분이면 오는데
전화 한 통이면 어김없이 오는 치킨
다리 꼬고 누운 치킨이 캴캴 웃으며
친구를 불러 보라고 놀려대지만
삼십 분만에 달려올 친구가 없다
후라이드 치킨 양념 치킨 죄다 먹어치우는
지금 내 몸은 흡족하게 풍만해진다
닭뼈처럼 나의 뇌 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형체를 잃은 감정들은 누구의 감정인가
누구의 그리움인가
치킨을 시켜 먹는 저녁
나는
전혀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