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 동산 어린이 첫번째
캐서린 스콜즈 지음, 로버트 잉펜 그림, 송성희 옮김 / 동산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12월이다. 동산사의 '동산 어린이 첫번째' 라는 시리즈 제목을 달고 '세상과 처음 만나는 나, 세상과의 교감을 위한 생각 깊은 책'이라는 간명한 목표를 걸고 나온 책이다. 이번에 4학년 남학생들과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원제는 이다.

<평화는...>은 우선 글과 그림이 눈길을 잡아끈다. 아이들에게 이 책의 독특함에 대해 물어보니 주인공이 없고 그림이 이상하고 글이 시처럼 적혀있다고 반응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평화'다. 평화는 추상적인 단어이지만 여기서 평화는 살아서 움직이고 자라고 널리 퍼져나가고 보살펴주어야 하는 것, 생명이 있는 것으로 구상화된다. 이런 글 옆에 어떤 삽화가 어울릴 거라 생각하는가. 역시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색 깃털의 비둘기 한 마리가 땅으로 날아내려오는 그림이 클로즈업되어 그려져있다. 평화는 도처에 있지만 찾을 때에만 보이고 지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언제나 나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런 성격을 지닌 제법 까다롭고 귀한 친구다.

이 책의 삽화는 시적이며 철학적인 글 못지 않게 강한 흡입력이 있다. 아이들 눈에 그림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글과 잘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그림만 다시 보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그림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끌어내 주었다. 예를 들자면 물통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아프리카 여인네들의 뒷모습 같은 것이다. 그에 해당하는 글은 "평화란 필요한 것들을 갖는 것입니다" 이다. 물부족 국가가 많고 생명에 필요한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워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지구의 다른 편에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아이들의 눈에 낯설어 보인 삽화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의 일러스트레이터, 로버트 잉펜의 작품이다. 그 그림책에서 전율적으로 전해지던 생명력과 섬세함이 이 책에서는 좀더 부드러운 색조로 전해온다. 사건 중심의 이야기책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추상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글들을 사실적이며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평화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미덕을 발휘한다. 글과 그림이 똑같은 비중으로, 전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평화란 긍정적인 조건과 환경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보편적인 생각을 뒤집어주는 글귀도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특별한 평화를 언급하는 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커다란 고통이나 두려움을 느낄 때, 또는 위험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에도 평화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철학이나 신앙이 필요하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 뿐만 아니라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일러주고 있다.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긴 하지만 개인의 마음속에만 평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평화는 우선 개인에게, 사람과 사람 간에, 나라와 나라 간에,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있어야하는 것이다. 개인의 평화와 사회의 평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적이며 공존하여야 하는 필요충분조건같은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사람간의 평화 이외에 사람과 자연과의 평화를 이야기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일들로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평화가 깨어지고 있음을 언급하는 글귀가 퍽 마음에 든다. 우리의 생각을 확장하게하고 눈과 마음을 크고 넓게 만들어주는 글이다. 감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을 짚어주는 글귀들은 실천과 행동의 중요함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은 아이들의 사유를 폭넓게 한다. 평소 생각하기를 어려워하고 피하려하는 아이들과 때로는 추상적이며 본질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얻는 게 많을 것 같다. 즉물적이고 표피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려드는 아이들에게 진지한 생각을 끌어내려는 이런 책들이 '입에 쓴 약'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제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몸 바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끌어내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에 대하여도 말해보았다. 작게는 자신의 내면에서의 평화로 시작하여 가족의 평화, 친구간의 평화는 물론 불우이웃돕기나 쓰레기줍기 같은 실천을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 개구쟁이들이지만 그들의 착한 눈을 믿는다.

나는 지금 먼저 '나의 평화'를 실천하고 있나.. 마음에 평화가 깨어지며 시비를 걸고 싶어질 때면 이 책을 조용히 펼쳐볼 것이다. 짙은 갈색의 속지와 전체적으로 채도를 낮춘 갈색톤의 삽화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마치 평화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에 있다고, 아니 있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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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6-2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리뷰네요!
저랑 비슷한 일을 하시지만 더 매력적인 일을 하시는 것 같네요. 잉, 부러워요!

또또유스또 2006-06-24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즉물적이고 표피적인 것만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지라 이 책은 저를 위하여 읽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요즘 시비가 걸고 싶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