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비단으로 짠 천성산 - 초록의 공명

6월 초에 도롱뇽 소송 대법원의 판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우리가 걸어 왔던 길을 돌아 보았습니다. 3보 1배는 도롱뇽 소송을 시작하면서 내원사 대중 스님들과 많은 종교인,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여 부산역에서 부터 천성산 정상인 화엄벌까지 7박 8일 동안 가장 낮고 느린 걸음으로 천성산을 올랐던 참회와 정진의 걸음이었습니다. 영상 속의 글은 녹색평론과 독일 인지학회지에 실렸던 리타 데일러 교수님의 글로 한 외국인의 눈에 비친 천성산 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비단으로 짠 천성산 - 리타 테일러(Rita Taylor) ― 영남대 영문과 교수. 인지학회 회원.

무덥고 찌는 듯한 여름날, 많은 작은 폭포와 깨끗한 용소로 이루어진 개울가를 따라 천성산의 내원사까지 걸어보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천성산의 수원(水源)에서부터 내려오는 이 계곡의 물이 말라버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천성산은 수많은 계곡과, 개울과 개천, 그리고 여러개의 소중한 습지가 잘 남아있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야생보존지역 중의 한 곳이다. 이곳은 내원사와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암자를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물어 지금까지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화, 곤충, 그리고 조류를 위시한 생태계가 섬세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의 특별한 자연생태계 때문에 한국정부는 몇해 전에 이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천성산 보존에 대한 약속을 어기고 그 대신에 프랑스의 떼제베(TGV)를 모델로 한 ‘총알’ 기차가 통과하도록 이 산을 가로지르는 18킬로미터에 달하는 터널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결정은 실용성보다는 정치적 타협에 근거를 둔 것이다.  

서울에서 한반도 남단의 부산까지 이어질 이 고속철선로는 기존의 새마을 열차보다 더 빠른 속도를 실현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가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다가올 고속철도 시대를 광고하려고 영어로 “달려라 한국, 위대한 한국”이라고 쓴 지역게시판을 보면 상황이 더욱 아이러니칼하게 느껴진다. 속도의 대가는 엄청나다. 그것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역의 자연유산의 상실을 강요하는데, 천성산이 그 상실의 일부가 될 것이다. 

 개울을 따라 올라가 우리는 숲으로 둘러싸인 산자락에 둥지를 튼 내원사에 도달하였고, 그곳에서 천성산을 관통하는 선로 결정에 반대하여 거의 외롭게 2년간 항의투쟁을 벌여온 지율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절에서 손님 대접으로 내어준 녹차를 앞에 놓고 지율 스님은 지금 계획중인 이 프로젝트가 산의 무수한 생물다양성에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할지 스님이 직접 손으로 모은 경이롭고도 헌신적인 노력인 조사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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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절을 마친 뒤 밤에 우리는 그이를 따라 천성산의 한 작은 암자로 올라갔는데, 그곳에는 다양한 환경단체의 대표들이 스님과 만나기 위해 모여있었다. 산속에서 밤하늘의 별은 빛났고 공기는 신선하였다. 작은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 지율 스님은 지난 몇달간 보여준 놀라운 헌신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생한 힘과 유머, 그리고 열정으로 산의 운명에 관해 토론을 시작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다. 이 모임의 결론으로 부산에서 천성산까지 3번 걷고 1번 절하는 삼보일배의 여정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삼보일배의 여정은 부산에서 시작하여 8일 만에 산에게 바친 회향식과 함께 천성산 화엄벌에서 끝났다. 그 분들이 이마를 땅에 대고 큰절을 할 때마다 그것은 땅에 대한 참회와 깊은 용서를 표현한 것이었다. 특히 약 6주간 날마다 삼천배를 계속한 뒤 바로 이 순례에 참석한 지율 스님을 비롯한 다른 모든 참가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희생의 메시지를 전하였는데,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우주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래서 땅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이라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이었다.
 
비구니 스님들이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마치 물결치는 파도처럼 열지어 삼보일배하는 모습은 산자락의 능선과 계곡이 서로 굽이치며 솟았다 내려갔다 하면서 멀리 지평선까지 율동적으로 흐르는 모습과 비슷하였다. 나는 일본 선종의 유명한 도겐(道元) 스님이 자신의 책《산수경》에서 부처가 얘기한 오래된 지혜를 인용하면서 했던 신비로운 말이 생각났다. “저 푸른 산들이 늘상 걸어다니는구나.” 그리고 “너희들은 푸른 산이 걸어다니는 것과 너희들의 걸음을 잘 살펴보거라.” 삼보일배의 순례 그 자체가 이 나라의 비폭력과 이타적 저항운동의 역사에 길이 새겨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런 항의가 정부의 계획에 어떤 효력을 낼지 거의 불투명하다. 어떤 경우에도 산의 목소리에 대한 지율 스님의 공명으로 시작된 이 순례가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의 순례가 되어 우리에게 ‘걷기’, 즉 우리들의 걷기가 산의 걸음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순례의 의미는 우리에게서 끝나게 될 것이다.  

우리 심장의 박동이 자연의 리듬과 공명하는가. 산이 물결처럼 흐를 수 있으려면 우리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지 말아야 한다. 산의 뭇 생명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그 개울물이, 지율 스님이 잘 간파하였듯이, 메말라버릴 위험에 처한 우리 마음의 샘물에도 닿아야 한다.  

많은 어린 학생들이 천성산으로 소풍을 가서 ‘산과 물’을 직접 경험하고 거기서 지율 스님을 직접 만나 그 분의 가르침을 접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우리가 이른바 ‘진보’가 가져올 편안함을 자연과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일과 저울질하듯 가늠해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무한한 뭇 생명체들의 보금자리인 땅을 위해 필요한 희생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지율 스님은 산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어떤 무심한 순간이면 점점 어두워져 가는 산의 앞날 때문에 더는 견디기 어려운 깊은 슬픔이 스님의 눈가에 내비치기도 한다. 스님의 말은 공허한 소리가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 ‘금수강산’이라는 한국어 표현이 있다. 이 말은 아름다운 풍경을 형형색색의 비단실로 강과 산을 수놓은 자수에다 비유한 것이다. 지율 스님은 일천명의 성인(聖人)을 뜻하는 천성산이라는 눈부시게 퍼지는 빛나는 비단폭에 자신의 생명을 실 삼아 지금 수(繡)를 놓고 있는 것이다. (박혜영 옮김)   

리타 테일러(Rita Taylor) ― 영남대 영문과 교수. 인지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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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3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보고서 땅, 6학년 책 수업하면서 참고로 잘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