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펭귄과 함께한 300일 - 두 발로 걷는 그들이 말없이 가르쳐준 생의 고귀한 메시지들
송인혁.은유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7화) 사랑도 황제급 - 황제펭귄과 함께한 300일 > 배혜경과 함께 읽기 | 갈맷길70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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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에 갈증이 날 때면 동물원에 가보길 권합니다. 동물원에 가보기가 여의치 않으면 동물 사진이나 동물을 주제로 한 사진에세이집을 보곤 합니다. 삶이 시시하게 느껴지거나 번다한 일로 지친 마음이 저절로 웃음 짓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삶의 진리가 있지요. 이 책의 저자 송인혁과 은유는 황제펭귄의 삶에서 깨달은 소중한 진리를 전해줍니다.

누군가에게 겨울은 피하고 싶은 계절이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계절이 될 수 있습니다. 황제펭귄에게 남극의 혹독한 추위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해 1백 킬로미터를, 오로지 두발로 걸어서, 남극의 끝으로 찾아오는 황제펭귄은 그 이름부터 근사하지요. 역시 이름은 중요합니다. 펭귄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데, 최고 120에서 150센티미터 키에 22-50킬로미터의 몸무게가 되는 것도 있다 합니다.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경이로울까요.

저자 송인혁은 실제로 영하 80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남극에서 경험한 일을 잊지 못합니다. 커다란 황제펭귄이 다가와 자기 앞에 턱하니 섰던 그 때를요. 표지의 황제펭귄은 회색 솜털로 덮여 있는 새끼입니다. 작은아이 방에 있는 펭귄인형과 흡사합니다.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어른 황제펭귄은 정말이지 멋이 있습니다. 남극의 신사답게 검은 제복을 입고 있어요. 배는 하얗고 목덜미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색을 두르고 있습니다. 턱시도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 정장을 입은 것 같다고 송인혁은 말합니다.

 

이 책은 훌륭한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을 제작한 팀원 중, 송인혁, 김진만 PD가 다시 남극을 찾아가 동상을 견디며 담은 기록입니다. 황제펭귄의 감동스러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느낌과 함께 오래 담아두고자 합니다. 자칭 문필하청업자라고 하는 은유가 송인혁을 여러 차례 인터뷰하여 황제펭귄 생의 한 주기인 300일을 함께하며 "두 발로 걷는 그들이 말없이 가르쳐준 생의 고귀한 메시지들"을 맛깔난 글에 담아냅니다. 사진 못지않게 은유의 글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동물사진이 담겨 있는 사진에세이를 보면 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날까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지극한 자연스러움과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지요. 자연스러움은 아름다움입니다. 그들이 사랑을 하는 방식과 새끼를 낳고 기르고 독립시키는 과정은 모두 자연스럽습니다. 암컷의 수가 더 많은 이들은 서로 목소리의 파장과 숨소리의 리듬을 외워 몸에 저장합니다. 한 쌍의 암수가 부단한 연습과 소통으로 사랑을 이루어냅니다. 이렇게 상대의 특별한 소리를 기억해 두었다가 훗날 상봉합니다. 

그들이 삶을 살아내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제펭귄 1만여 마리는 1년을 같이 나기 위한 생활공동체, '루커리'를 이룹니다. 특히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공생하는 방법으로 '허들링huddling'이 유명합니다. 자연을 해치거나 서로 경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곁을 내어주고 어깨를 겯고 배려와 양보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들이 "둥글게 둥글게" "안으로 안으로" 큰 원을 그리는 장면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혼자서는 가혹한 추위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황제펭귄은 하늘을 나는 새가 아니라 "바다를 나는 새"입니다. 수컷은 새끼를 먹여 키우기 위해 바다를 날며 물고기를 잔뜩 먹어둡니다. 수컷은 암컷에게서 알을 받아 배란낭에 넣고 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암컷에게서 알을 전달 받을 때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극한의 추위에 바로 얼음덩어리가 됩니다. 수컷은 알이 깨어나면 서너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망부석처럼 서서 새끼를 먹입니다. 새끼를 독립시키기까지 지극한 정성입니다. 추위와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죽는 수컷도 있습니다. 엄마펭귄이 돌아오면 아빠는 새끼를 옮겨주고 바다로 먹이사냥을 나갑니다. 이렇게 부화 후 50일 가량 번갈아 새끼를 돌본 후 독립시킵니다. 헌신적으로 돌보았지만 집착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발등에서 떨어져나간 새끼는 바로 얼어 죽습니다. 바다로 나아가는 새끼는 20%에 불과합니다. 새끼들도 그렇게 습득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이어나갑니다. 삶은 반복됩니다.

생의 추위를 이겨내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모든 걸 함께​하기, 묵묵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정의 주파수를 맞추어 사랑하며 험난한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내기 그리고 집착하지 않기. 눈부신 빙벽에 새하얀 햇살이 내리쬐는 남극을 배경으로 우뚝 선 황제펭귄의 위엄을 송인혁은 이렇게 말합니다.

황제펭귄은 모든 바다새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게 진화한 동물이다. 비행능력을 상실했지만 새와 사람과 물고기의 속성을 다 가졌다. 어느 것도 아니지만 전부이기도 하다. 21세기 하이브리드형 인재 캐릭터다. (216쪽)

​ 그리고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면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송인혁 PD의 말이 와닿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겠지요. 남극의 추위가 아무리 혹독하다고 해도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야 그저 관념일 뿐입니다.

확실히, 갈맷길을 함께 걷는 여러분들의 모습에도 황제펭귄과 닮은 점이 보입니다. 추위가 황제펭귄에겐 삶을 이어가는 수단이자 목적이 되듯, 벚꽃천지로 눈부시게 화사한 봄날이 우리에게 그런 날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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