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경과 함께 읽기 1화
관찰의 인문학/알렉산드라 호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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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고 하는 행위는 무엇에 기반할까요? 내가 보는 것을 타인도 같이 볼까요?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니 분명 놀랍게 여겨질 때가 많을 것입니다. 오해와 오독이 그렇게 하여 생겨나기도 합니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봅니다.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 집중의 문제 그리고 스키마의 문제입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게다가, 보이는 만큼 아는 게 아닐까요! <관찰의 인문학>은 그런 논지에서 신선하고 흥미롭고 유익한 실험을 한 심리인지과학 분야 박사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착한 결과물입니다. 원제는 <On Looking>입니다. '본다는 것에 대하여'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관찰, 즉 '선택적 집중력'을 발휘해 평소 주목받지 못한 것들에 시선을 밀착하는 방식입니다.

 

이 책은 보되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를 극복해 볼 수 있는 유효하고 즐거운 방법을 전합니다. 저자 자신이 같은 길을 여러번 걸으며 본 것들에 대한,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이기도 합니다. 길을 걷되 혼자 걷는 게 아니라 열한 명의 다른 대상과 함께 걸었습니다. 누구와 걷느냐에 따라 우리가 보고 깨닫고 느끼는 것의 범주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인생길 동반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길이 다르게 보이고 그 길에서 얻는 게 달라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저자는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사랑하는 병'이 있는 어린아들을 비롯해 지질학자, 타이포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 곤충 박사,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사회학자, 의사와 물리치료사, 시각장애인, 음향 엔지니어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맨해튼의 동네 길을 걸었습니다. 저자가 보지 못한 것을 그들이 봅니다. 그들 대다수는 주의 깊게 보기 전문가인데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합니다. 알렉산드라는 '직업적 왜곡'이라 불리는 특정한 편향성에 적극적으로 기대어 도시의 길을 걸으며 보이는 것을 눈에 담고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시야를 확실히 넓혔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상당히 실험적이고 빛나는 제안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다면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라"는 덤으로 얻은 멋진 말입니다.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것만 본다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유세계는 얼마나 갑갑할지요. 흔히 우리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의 인식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더 이상 놀랍지 않습니다. 164쪽에 "집중과 기대는 우리가 코앞에 두고도 무언가를 놓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를 부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현상이라고 한다."로 이어지는 내용들을 주욱 읽어보면 인체의 감각기관에 어떤 헛점이 장착되어 있는지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맹신이나 자기과신, 선입견으로 타인에게 무례함이나 오만함의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관찰의 인문학>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고 시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해볼 수 있게 합니다. 유쾌합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혼자 걸었던 첫 산책은 이제 유화의 밑칠처럼 느껴진다고 썼습니다.  그 후 층층이 덧칠한 산책들로 말미암아 의미가 더해진, 그럼에도 칠하지 않고 남겨둔 부분과 같다고 썼습니다. 우리의 생에서도 타인과 동행하며 덧칠한 붓길들이 아무리 많다하여도 덧칠되지 않고 삐죽 보이는 밑칠이 남습니다. 본질은 쉬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전의 밑칠 그대로가 아닙니다. 이미 주변의 덧칠로, 덧칠을 배경으로 밑칠의 효과와 의미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럼!

 

지레 지치지 말기 바란다.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다. 우리는 부주의를 권장하는 문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음으로써, 어쩌면 이 책을 읽기로 함으로써, 당신은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에 가치를 두는 새로운 문화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관찰하는 사람의 눈앞에는 하찮은 동시에 굉장한 것들의 어마어마한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보라!  

- 339쪽,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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