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직업이 바로 작가라는 직업이오. 문체니 주제니 줄거리니 수사법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작가 자신이니까. 그것도 말이라는 걸 갖고 그렇게 한단 말이지. 화가나 음악가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네 작가들처럼 말이라는 잔인한 도구를 갖고 그렇게 하진 않소. 암, 기자 양반. 작가는 음란해야 하오. 음란하지 않다면 회계사나 열차 운저누나 전화 교환수 노릇을 하는 게 더 낫지. 다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들 아니오.-21쪽
나는 음식을 먹듯 책을 읽는다오. 무슨 뜻인고 하니, 내가 책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책이 나를 구성하는 것들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는 거지. 순대를 먹는 사람과 캐비어를 먹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잖소.-76쪽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읽히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특혜지. 어떤 이야기든 다 쓸 수 있으니까. -79쪽
이 시대처럼 가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오. 한마디로 허위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대요.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나쁘지.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말로 장식되는 졸렬한 자기만족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오. 또 남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정직하고 사악한 거짓말, 남을 궁지로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지. 사이비 거짓말, '라이트'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미소를 띤 채로 욕을 해댄다고,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오.-82쪽
귀는 입술의 울림상자요, 내면을 향한 입이라고.
손은 쾌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거요. 글을 쓰면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작가는 당장 절필을 해야하오.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패륜이오.-95쪽
독서 혹은 非독서와 결부된 대화가 얼마나 거만함으로 가득할지. 그리고 또 기타 등등하며! 그러니 나한테 글쓰기가 강간처럼 해롭지 않다느니 하는 얘기일랑 하지 마시오.-96쪽
글을 쓴다는 건 소통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오. 왜 글을 쓰냐고 물었으니, 매우 엄정하면서도 매우 배타적인 대답을 들려드리리다. 그건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요. 글쓰기는 날 쾌감의 절정으로 이끌곤 하오.-97쪽
문제는 읽는 장소가 아니라, 읽기 그 자체요. 내가 바라는 건 내 책을 읽되, 인간 개구리 복장도 하지 말고 독서의 철창 뒤에 숨지도 말고 예방 접종도 하지 말고 읽으라는 거요.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부사 없이 읽으라는 거지.-177쪽
창작 행위에 있어서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오. 정해진 형태도 의미도 없는 우주와 마주하여 작가는 조물주 노릇을 할 수밖에 없소. 작가가 대단한 글재주로 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지 않는 한, 사물들은 제 윤곽을 지니지 못할 테고 인간의 역사 또한 놀란 입만 쩍 벌리고 있게 될 거요.-226쪽
레오폴딘을 목 조르면서 내가 그애를 진정한 죽음으로부터, 즉 망각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거요. ....... 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 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소? 망각은 대양이라오. 그 위엔 배가 한 척 떠다니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란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억의 배는 초라한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오.-230-231쪽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언젠가는 진부한 표현들 너머 말이 그 처녀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황무지'에 도달하리라는 일념으로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악취미다 싶은 말을 하면서도 경이로울 정도로 지고지순한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 말싸움과 하찮은 불평불만을 영원히 넘어서는 것 말이오.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일 거요. '사랑하오'라고 말하면서도 음란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는.-251쪽
문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변별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오. 우리의 숭고한 대화도 불가능했을 것이고.-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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