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하룻밤의 만찬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데이비드 그레고리 지음, 서소울 옮김 / 김영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결혼을 한 이후로 내게 주어진, 영원할 것만 같은 숙제는 종교문제이다. 종교가 없었던 친정에서와는 달리 기독교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시부모님들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몇 해 전 세례까지 받았다. 하지만 늘 체증처럼 답답하고 어느 땐 지리하고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몇 해 전 교회를 다닐 때에는(물론 어른들 눈 때문이었지만) 교회의 어느 인자한 전도사님 덕택에 나는 찬송을 하며 흐느끼기도 하고 그분들의 기도를 받으며 솟구치는 눈물을 감출 수 없기도 했다. 지금은 이 책의 주인공 닉 코민스키처럼 책상자의 가장 아랫부분에 넣어둔 성경처럼 교회와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적도구는 '대화만이 진정한 소통을 이루게 한다'는 저자의 신념이 낳았다. 예수와 단둘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란 아무에게 올 수 없지만, 진정 갈망하고 고민한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진다. 이 대화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 자신에 대한 폭넓은 성찰이기 때문이다.

풀코스로 나오는 고급레스토랑에서의 대화는 억양을 조절하게 만들어 격앙시키지 않고 감정에 흐르지 않게 한다. 다음 메뉴를 들고 서 있는 웨이터 때문에 적당한 지점에서 대화가 끊기기도 하며 대화의 호흡을 조절하게 하는 잇점이 있다. 사실 단 둘만의 대화에 긴장하고 어색해하며 상대적으로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만찬이란 고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마주보며 정곡을 찌르는 대화를 나눌 때 내 안의 감추어둔 상처와 상실감을 쳐다보는 일이 잠시 고통이더라도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닉은 조롱조로 예수를 호칭하며 냉소적인 말투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상대의 태도와 어조에 점차 자신의 중심을 찾고 좀더 솔직해진다. 여태 그러고 싶었던 상대를 갈구하고 있었음이 진실일테다. 닉의 이런 불안감을 상쇄해줄 만치 예수의 화법은 통쾌하며 확고하다. 상대로 하여금 신뢰하게 하고 동요하지 않게 한다.

예수는 닉을 정말 선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순수하고 착한(?) 우리는 그만큼 위악을 부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의 말에 의하면 신과 멀어져 자신 안에 깃들어있어야할 신의 성질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며 우리를 통해 나타나고 우리를 통해서만 사랑을 보여준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사함'과 '영생'에 대한 이론도 예수의 입을 통해 쉽게 전달된다. 영생이란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칭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 시작되는 것이며 그것이 의미가 있다함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는 순간부터 내 삶이 변화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바라는 삶, 그것은 사랑의 삶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아찔했다. 그럼 기독교도이면서도 사랑의 실천을 하지 못하는 부류는? 대답은,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완전무결한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자신의 선함을 믿어선 안되는 데 말이다. 이 책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를 비교설명하며 기독교적 입장에서 그 창시자나 계시의 진실성에 대하여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이 다소 거슬리지만 과학적인 사실과 더불어 우주관을 제시하며 논리적인 지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들을 만하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이 가장 갈구하는 것은?, 이라는 예수의 질문에 닉은 머뭇거리며 마음에 없는 대답을 하고 예수는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단호히 받아넘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곁에서 위로와 사랑을 주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지금도 문 밖에 있는데, 들어오라고만 하면 내 영혼의 집안에 들어올 수 있을텐데, 우리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나의 영혼을 온통 차지하고서 그 존재를 밀어내고 있는 것의 정체를 생각해보게 한다.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이듯 비근한 일례를 들어가며 그 사랑의 부피와 질감을 납득시킨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품고 지냈던 신에 대한 증오, 직장 내 비리에 대한 자신의 비겁함, 부딪히기만 하는 아내와의 뾰족한 관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의 지리함 그리고 어린시절 품었던 자유분방한 모험심의 퇴색. 삶의 이런 문제들을 이제부터 닉은 현명하게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다음에 한번더 예수와의 저녁식사를 제안한 것으로 보아서 희망적이다.

비기독교인이라면 여기까지 빨려들듯 읽어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완전히 믿어지지 않는 점도 있을 것이다. 나같이 어설픈 신자는 물론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오래 묵혀두었던 자신과의 대화! 닉처럼 나도 지금 멀리 하고 있으면서도 늘 잊지 못하고 마음 쓰이는 그 존재와 마주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몇 해 전 찬송가와 기도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멈출 줄 몰랐던 기억만큼은 아니어도, 가슴 가운데 묵혀두었던 자그만 덩어리가 불거져나오는 느낌이다.

에피타이저와 샐러드, 메인요리와 디저트 그리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서 귀가를 하기 전, 닉은 예수와 악수를 나눈다. 닉이 멈칫하자 나도 긴장을 했다. 무언가 반전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일까. 그의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확연히 드러나는 고통의 흔적은 흔히 알고 있는 상식과 달라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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