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영화를 먼저 보았다. 두 주인공들의 역할이 기대보다 미미하여 감정이 몰입되지 않았다. 뭔가 부족한 느낌으로 영화관을 나서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아쉬웠을까. 좀더 뜨거운 무엇, 좀더 섬세한 무엇, 좀더 거칠고 여과되지 않은 무엇을 은근히 기대했던건지도 모르겠다.

소설 '외출'은 이런 것들을 어느정도 충족해준다. 언어는 섬세하다. 표정이나 몸짓이 다 그려내지 못하는 미세한 것들을 언어가 그려내고 있다. 행간에서 느껴지는 절절한 것들이 느껴져 간간이 몸서리를 쳤다. 작가는 영화 속의 두 배우를 어느정도 생각하며 묘사하고 있다. 독자인 나도 그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달랐다. 배우들이 표현해주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잘 묻어났기 때문이다.

외출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누구든 일상속의 외출을 꿈꾸고 탈출을 꿈꾼다. 그것은 어쩌면 금기에의 도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달콤한 유혹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마음 먹고 있다가 예정된 시간에 찾아오는 것이라면 준비나마 할 수 있을텐데, 현실은 아주 무뚝뚝하고 세심하지도 못하다. 아무 곳에서 아무 때에 툭 불거져나와선 우리를 휩싸고 정신없이 돌아가게 하는 게 현실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의 연속임에도 우리는 잘 흡수하고 적응하고 따라간다. 특히 그 현실이 고통스러운 것일 때,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는 법 또한 우연한 것에서 찾곤 한다.

서영과 인수가 고통의 다리를 건너는 법이란 지리하다. 목이 타는 자에게 물을 건네고 죽어가는 자를 지키는 병상 옆의 그사람에게 화분 한 개를 건네는 것이다. 기껏 밥을 먹자고 하고 상대의 발소리에 귀를 세우는 일만큼 답답하다. 하지만 그것은 눈뭉치를 만들어 주며 던지게 하고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꺼억꺼억 우는 사람 뒤에서 그 울음소리를 들어주는 일만큼이나  어렵지 않고 다정하다. 한쪽이 막혀 답답할 때에는 반드시 다른 방향의 출구가 보이는 법이다. 내가 받고 싶은 위로만큼 내가 건네는 것이다.

서영이 찾은 새로운 길과 인수가 되돌아간 수진과의 생활은 대조적이다. 서영은 자기 일도 가지고 죽은 남편에 대한 미련도 다 식어빠진 커피처럼 무미건조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인수는 서영에의 그리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수진에게 헌신적인 생활을 한다. 나는 여기서 인수가 아니라 수진에게 연민을 느꼈다. 수진이 외출을 한 이유, 수진이 이혼을 요구한 이유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인수라는 남자는 분명 차가운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아니 차가운 게 아니라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의식이 강한 수진이 그런 보이지 않는 오만함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 그들의 해묵은 사랑도 이런식의 태도 앞에선 무색해져갔을 테다.

서영과 인수의 고통은 그들이 다시 같은 길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종결되는 듯하다. 그들이 고통을 건너는 법을 보면 우리네 삶에서 건너야만 할 고통의 다리란, 참 어이없게도, 세월을 따라가다보면 다 건널 수 있도록 예정되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이 겪는 고통 또한 그다지 힘들어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내게 치명적인 폭풍이 몰아치고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때, 그것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연한 것에서 찾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닿아있다면... 외출이든 정박이든, 고삐는 바로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모른 척 할 수 없음이다.

서영과 인수가 선택한 그 방법이 밝아보여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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