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스 극장의 연인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
자닌 테송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학 1학년 아이들과 읽었다. 아직 남녀간의 사랑에는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라 크게 와 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중 몇몇은 진한 감동을 느꼈는지 나의 코멘트에 고개를 끄덕이며 촉촉한 눈빛을 보였다. 한 남학생은 식스센스 못지않은 반전이 놀라웠다며 퍽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한 여학생은 읽어내려가기가 하도 답답하여 뒷장을 보고 비로소 대사가 이해 되더라고 말했다. 이들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읽어내려갔다고 했다.

<뤽스극장의 연인>은 열아홉, 스물셋의 풋풋한 남녀의 대사와 속마음이 느리지않게 전개된다. 교차되며 흘러나오는 이들의 심리는 빛과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사랑의 감정으로 온 마음이 뒤흔들리며 애틋한 감정을 맛보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진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뤽스는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에게 빛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일 뿐이다. 빛이 차단된 극장 안은 이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설정이다. 암담한 마음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는 순간은 예전에 보았던 영화들을 보는 시간 속에서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찬란한 사랑의 빛을 발견한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오페라하우스가 그러하듯, 이곳 극장이라는 장소는 이들에게 하나의 세계다. 환희와 고통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빛을 찾는 이들의 진정어린 마음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뤽스극장은 '한물간 영화관' 이다. 마치 지금의 가볍고 자극적인 입맛를 따라가는 세상을 상정하는 것 같다. 이 극장에서는 저급하다고들 하는 상업영화를 주로 상영하지만 오로지 수요일 하루 두 차례만은 '진정한 영화'를 상영한다.  두 남녀는 바로 이 진정한 영화를 보기 위해 이곳에 수요일마다 온다.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요즈음 '진정한 영화'는 이들의 '진정한 사랑' 을 빗대어 말하는 듯하다. 수요일, 일주일의 가운데 하나의 경계를 지나는 시점. 이 시점에서 이들은 조심스레 사랑을 느끼고 키워나가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서로의 진실을 알게되었을 때의 그 놀람과 안도감과 반가움이란..  이들의 사랑을 보면 사랑은 그저 받거나 주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며 교감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한다.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자에게만 사랑은 오는 것일 거다.   

이 책 속에는 고전영화들이 많이 나온다. <연인들>이라는 영화에서는 내래이션이 맘에 든다고 말하는 여자주인공이 안스럽다. 내래에션에 집중하여 빠져드는 이들은 명대사들에서 자기의 생각을 밝히며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상대를 서서히 알아가며 서로 빠져드는 과정에 독자도 흡입된다. 재즈피아니스트가 직업인 남자주인공 때문에 엘라 핏제랄드와 레이 찰스도 언급된다. 레이 찰스도 후천적 시각장애인이지 않나.

이 이야기는 책장을 덮은 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어내려가면 감동과 재미가 더 하다. 군데군데 깔려있었던 반전의 비밀이 모습을 확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의 장면으로 연출하면 참 멋질 것 같은 곳이 많다. 선물을 하겠다는 남자주인공의 말에 여자주인공은 속으로 생각한다. 여기 내 곁에 있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고.. 라벤더색 실크스카프를 두르고 행복해하는 여자의 얼굴을 남자는 볼 수 없다. 단지 그 하늘하늘한 스카프의 한 자락이 그의 얼굴을 간지럽힐 뿐이다.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도록 슬프다. 눈물이 뺨에 번지는 장면을 그릴 수 있다. 이들은 서로의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상처를 더듬는다.

어쩌면 보이지 않아서 더 절실하고 더 깊을 수 있지 않을까. 다 알지 못함이 오히려 이들을 서로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는 사랑은 그래서 강건해지나보다. 사랑은 단 한 번의 눈길로도 생겨날 수 있다, 는 영화의 대사에 대한 마티외의 생각이 신선하다. "사랑이 생겨나는 데는 눈길조차도 필요 없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