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시월도 어느새 열흘을 넘기고 있다. 지난 주 점자도서관에 가지 못해 어제 시월 들어 처음 가게 되었다.
밀린 1차편집분 도서들 어서 진도 나가야 된다. 그런데 또 녹음하고 싶은 책에 두시간 할애하고 남은 시간에 편집^^
고미숙 님이 공부는 몸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요약정리, 필사나 낭송 같은 방법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낭독으로 읽고 편집하며 한 번 더 읽고 참 좋구나.
입으로 읽으면 내용이 잘 안 들어오지 않냐고 누가 묻길래 처음엔 틀리지 않게 읽으려고만 집중하다보면 좀 그런대
이젠 낭독하며 밑줄도 긋는다고 하니 오호~ 웃더라. 운전하며 김밥도 먹고 화장도 하듯 ㅎㅎ 위험해 이건.
아무튼 좋다. 내게 온 모든 것들이.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쓰고 엮음 / 포럼
2012년 10월 10일 녹음시작
256쪽 중 66쪽까지 녹음.
박지원, 이덕무, 이수광, 이익, 장유, 정약용, 홍길주, 홍석주, 허균, 최한기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문장가들의 저술이나
문집에서 글쓰기와 관련한 좋은 내용을 추려서 엮은 책이다. 각각의 글 뒤에는 엮은이들이 느낀 소감을 재치있는 문장으로
짧게 기록해 두었다. 입시와 취업, 혹은 사회 여러 곳에서 '글쓰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한 가닥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서문에 밝혀 두었다. 실용서는 아니고, 책은 가볍고 아담한 분량이다.
95가지 제목으로 95가지 조언이 실렸다. 역시 글쓰기에 왕도나 첩경이 있지는 않지만, 은은한 묵향처럼 퍼지는 근본적인
조언들을 새김질해 볼 만하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잊기 쉽고 실천하기는 더 어려우니 늘 깨닫고
채찍질이 필요하다. 문장가들의 문장이니 그 문장 자체로도 향기롭다.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 조언은 보편적이다.
시대에 맞춰 글을 쓰되 옛고전에서 모범을 찾으라는 말과 역사서를 포함한 다양한 독서의 중요성, 기교에 치우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빠진 글을 지양하고 글과 사람의 일치함을 강조하는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치있는
충고다.
기이하고 뛰어난 작품들이 든 책 꾸러미를 짊어지고 자신을 찾아와 포부와 학식을 쏟아내며 눈을 반짝이던 젊은이,
이인영에게 다산이 들려준 말은 참으로 한 젊은이를 살린 살뜰한 스승의 말이 아니었나 싶다. 명쾌하고 따끔하다.
나도 부족한 부분이라 여기 옮기며 새겨둔다.
"이리 와 앉아 보게. 내 자네에게 한 마디 하겠네.
문장이란 학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바깥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이네. (중략)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갑자기 문장을 이룰 수 있겠는가? 온화하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도와 우애로 본성을 닦아 공경과 성실을 한결같이 실천해야 하네. 이렇게 힘쓰고 올바른 길을 바라보면서 고전으로 마음을 닦고 지식을 넓히고,
여러 역사서로 과거와 현재의 변화하는 이치를 꿰고, 예악 문화와 법령 및 정치제도 그리고 옛 문헌과 법도 등을
가슴 속 가득 쌓아야 하네.
그런 다음 외부의 사물과 마주쳐 옳고 그름, 이롭고 해로움을 다투게 되면, 마음속에 가득 쌓아둔 경험과 지식이
파도를 치듯 거세게 소용돌이쳐 천하 만세의 웅장한 광경으로 세상에 남겨 놓고 싶어질 것이네. 그런 의지와 욕구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네. 그걸 지켜 본 사람들은 앞 다투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네.
나는 이러한 이치로 자신을 표현한 글만을 참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하네.
어찌 풀을 헤쳐 바람을 맞이하려는 듯 분주하게 서두르고 성급하게 내달린다고 문장을 붙잡고 삼킬 수 있겠는가?
(생략)"
정약용 <다산시문집> '이인영에게 주는 말'
- p60
포럼 출판사의 조선지식인 시리즈로 이런 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