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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 초록도깨비 ㅣ 낮은산 작은숲 15
김중미 지음, 유동훈 그림 / 도깨비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괭이부리말아이들, 로 유명한 김중미의 네번째 동화이다. 초등 4학년 정도에서 보면 괜찮을 것 같다. 이 동화는 특별히 일기형식을 하고 있다. 4남매가 쓴 일기를 세째 상미가 모아서 정리한 것처럼 해놓았다. 1990년 첫째 상윤이의 일기를 시작으로 2001년 막내 상희의 일기로 맺는다. 그 일기모음의 처음과 끝은 주인공 상미의 글로 시작하고 맺는다.
상미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버리는 것을 싫어하고 뭐든 추억 되는 것을 갖고 있기를 좋아하고 대학의 국문학과를 가고 싶어하는 아이다. 상미네의 가난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굴레이다. 상미네가 멀리 진도에서 인천의 이 달동네로 이사오게 된 후로 이들에게 가난은 벗어버릴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세상은 이들에게 그리 만만치 않고 이들의 꿈과 희망은 실날같아서 위태하다. 가난 때문에 이들의 꿈은 좌절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한다.
상미네가 정 붙이고 살게 된 이곳은 비가 오면 우산을 활짝 펴고 다니기에도 비좁은 골목들이 수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재래식 공동 화장실에서 아침마다 볼일을 보려고 줄을 잇고, 갯벌이 있는 바다는 쓰레기와 기름이 둥둥 떠 다니고 물도 더러운 '똥바다'이다. 상미네가 이사 오기 전, 물 맑았던 진도 앞바다에 비하면 이곳의 환경은 구역질 나는 곳이다. 그래도 이들 남매는 아파트가 없는 '우리동네'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적어도 가난 때문에 기 죽지 않고 떳떳하게 정을 나누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철거명령에 따라 생계를 잇고 있는 일자리를 막무가내로 내어놓아야 하고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하는 슬픔이 있는 곳이지만 이들에게도 한 가닥 희망이 있다.
맞벌이를 하니 우리도 금방 부자가 될 것이라고 위안하는 엄마의 목소리, 볕이 들지 않는 다락방에 아빠가 생일선물로 내어준 작은 창문 때문에 그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기분. 스티로폼 상자에 상추랑 고추모종을 심고 채송화 꽃씨를 심는 마음. 이런 것들로 희망이라는 가는 실의 꼬리를 잡고 이들은 오늘도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옛날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4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은 지금도 버젓이 있고 이런 환경에서 너희들 같은 아이들이 살고 있다고 말해주니까, 놀라는 기색이었다. 처음엔 장난으로만 받아들이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던 아이들도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작은 방법들을 이야기해보자고 유도하는 데서는 조금 진지한 대답들을 내어놓았다. WE START 운동과 결부하여 이들처럼 가난의 굴레를 지고 사는 이웃에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삽화를 담당한 분이 지금도 일하고 있는 기찻길옆 작은학교, 라는 작은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실제글이 두편 나오는데, 읽어보면 너무 솔직해서 배꼽을 조금 잡아야한다. 고스톱 관찰일기, 라는 일기는 진솔해서 재미나다. 그외의 일기는 작가가 쓴 것일테지만 여기 사는 아이들의 실제 일기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왔을 것이다. 작가는 지금도 괭이부리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짧지 않은 세월 모아둔 4남매의 일기를 죽 읽다보면 가슴이 조금은 답답해져올 것이다. 11년을 넘기면서도 상미네의 가난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이 책을 함께 읽은 4학년 아이들은 이들의 가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않겠냐고 반문했다. 이들에게는 다른 곳으로 가서 방을 구해 살 만한 돈이 없다고 하니까,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용돈을 아껴 모아서 이 사람들에게 갖다주자는 아이가 있어, 일자리를 만들어준다거나, 기술교육을 무료로 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유도하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가난은 우리 사회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구체적인 도움과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숙제가 아닐까싶다. 물론 가난한 자 그들 스스로 해야할 문제들도 있지만 더 가진 자들이 좀더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 동화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야하겠다. 이런 류의(가난을 소재로 한) 동화를 요즘 아이들은 그리 달가와하지 않지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며 희망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는 미덕을 가슴으로 느끼면 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