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피와 실수 대소동 - 즐거운 책 읽기 1
안드레아스 슐뤼터 지음, 카롤리네 케어 그림, 최병제 옮김 / 초록모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초록모자'에서 출간된 즐거운 책읽기 시리즈 첫 권이다. 뫼르피 시리즈는 작가의 모국 독일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후속편이 기대되고 있다한다. 그러고보니 즐거운 책읽기 시리즈 두번째 권은 '뫼르피와 실수도둑의 습격'이다. 4학년이 된 아이들과 함께 <뫼르피와 실수 대소동>을 읽었는데, 이 녀석들 벌써 두번째 권이 더 기대된다고 그 책 읽고 싶다고 애교를 떤다.

이 동화는 한마디로 재미있다. '실수'라는, 누구나 하면서 살고 어쩔 수 없이 반복하고 사는 사소한 그것을 동화의 글알로 삼았다는 점에 우선 점수를 주고 싶다. 게다가 '뫼르피'라는  작고 못생긴 천방지축 뻔뻔한 그러면서도 귀여워 꽉 깨물어주고 싶은 도깨비를 등장시킨 점도 이야기 전체에 생기발랄함을 불어준다. 주근깨 투성이 얼굴, 뻐드렁니, 돼지꼬리처럼 말려올라간 머리카락 양끝, 옷의 단추는 맞지않게 채워져있고 양말도 짝짝이(왠지 삐삐가 연상된다), 한 손엔 실수 삼지창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한 손을 허리에 척 걸치고 있다. 

발그레한 양볼과 귓볼은 앙증맞다. 뫼르피를 이렇게 그려놓은 것부터 해서 모든 삽화가 아주 개성있다. 각 페이지의 쪽수번호 위에 뫼르피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반복해서 그려져있는 것도 어찌나 귀여운지, 작은 배려가 아이들로 하여금 부담스러운 책이 아니라 재미있는 장난감처럼 여겨지게 한다. 책읽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는, 책이 자신을 짓누르는 게 아니라 행운을 주는 마스코트나 친한 친구같은 느낌으로 책을 만날 수 있게 편집이나 북디자인에서 각별한 정성을 보이는 책이 다소 도움이 된다.

이 동화에는 명언이 몇 나온다. 예를 들자면 '어리석은 자만이 실수를 하지 않는다' ,  ' 실수로부터의 자유!'  혹은 '어영부영 일을 처리하느니 차라리 크게 실수하는 것이 낫다!'  같은 것들이다.  실수할까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나 완전무결하기만 하려는 마음 자체를 지워버리라고 충고하는 말이다. 그리고 실수를 남 탓으로 돌리며 불평하거나 앓는 소리를 내지 말고 실수로부터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배우고 빚어질 수 있는 새로운 결과를 더 즐거워하라는 말로 들린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도 대충 끝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크게 실수를 한다면 오히려 깨닫고 배우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뫼르피는 이런 실수를 '환상적인 실수'라 이름하며 이런 실수를 아주 좋아한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환상적인 실수를 잘 저지르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실수도깨비이기도 하다. 요하나는 이혼한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종종 있다. 알렉산더는 엄마의 남자친구인데 완전한 것을 너무 좋아하는 그 사람이 집에 와 있으면 실수를 더 잘 저지른다. 이런 경험은 아이든 어른이든 했을 것이다. 너무 잘 하려고 긴장하면 오히려 실수를 하게 된다.

유익하지 못한 실수, 즉 환상적이지 못한 실수를 저지르는 알렉산더에게 뫼르피의 천적 제트천사들이 공격하고 뫼르피와 요하나는 힘을 합해 알렉산더를 구한다. 그 방법은 어떻게든 알렉산더가 스스로 '환상적인 실수'를 저지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실수삼지창과 실수비누방울을 가지고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제트천사는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에 쫓기고 매달려 있으면 그 대상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전화, 시계, 금고, 서류가방, 지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강박증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비친다. 

뫼르피가 요하나에게  하는 '실수'에 대한 짧은 강의는 프로이드를 연상하게 한다.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잘못을 만들어야지 하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뿐' 이라고, '가끔 실수를 저지르겠다는 소망이 얽히고설켜서 우리에게 착 달라붙지. 그런 다음 실수를 저지르게 하는 거야.'

프로이드는 우리가 흔히 하는 사소해보이는 말실수가 사실은 우리 안의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단 말실수만이 아니라 행동의 실수도 사실 들여다보면 은연중에 자신의 바라고 있었던 것이 표현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렇다면 그런 '실수를 통해서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동화는 그렇게, 내면 저 아래의 어두운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건강하고 밝게 그려내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슬기를 주려한다. 재미와 교훈과 대리만족이 통쾌하게 잘 섞여있다.

새학년이 되어 아이들은 한 학년씩 높아졌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주위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부담도 안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실수를 하게도 되고 때론 좌절감을 맛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아이는 작은 실수에도 자기 머리를 막 때리며 괴로워한단다. 이런 아이에게 <뫼르피와 실수 대소동>을 주고 싶다.

'차례' 옆의 속지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훌륭한 사람의 난관>

"무슨 일을 하십니까?" / K씨에게 물었다. / K씨가 대답했다.

"나는 애써 무척 많은 일을 해요. 그리고 다음 잘못을 준비한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코이너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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