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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한 꿈틀이사우루스
캐런 트래포드 지음, 제이드 오클리 그림, 이루리 옮김 / 현암사 / 2003년 6월
평점 :
꿈틀이사우루스가 어떤 동물이지? 공룡 중에 이런 공룡도 있었나, 게다가 꿈틀이사우루스가 지구를 구했다고? 우선 제목에서 호기심을 충분히 끌어당기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환경을 생각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부터 '환경동화'도 무수히 나오고 있다. 환경을 살리는 가장 중요하고 손쉬운 방법이 '재활용'이라고 한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냄새도 구수한 재생용지를 사용하여 만들어져 친근감을 더 한다.
꿈틀이사우루스는 비온 뒤 어쩌다 우리 발 밑에서 꼬물대는 지령이를 위한 거창한 이름이다. 공룡을 연상시키는 '사우루스'를 뒤에 붙여서, 그만큼 지렁이가 지구상에서 살아온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걸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이 책의 글을 담당한 캐런 트래포드는 호주 사람이다. 호주에는 아주 거대한 지렁이 농장이 있다. 꿈틀이사우루스가 최고급호텔이라고 부르는 곳이란다. 먼저, 작가는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사는 꿈틀이사우루스 2세를 만나러 간다. 땅을 파고 들어가, 꿈틀이사우루스 1세의 초상화를 그윽히 쳐다보며 앉아있는 꿈틀이사우루스 2세에게 지렁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와서 옮겨주는 형식을 취한다. 꿈틀이사우루스 2세가 그대로 들려주듯 서술하고 있어서 아주 재미있고 거리감이 없다.
공룡시대의 지렁이가 지구 위의 생물들이 어떻게 생명을 이어나가게 해 주었는지에 대한 쉬운 설명부터 시작하여 지렁이가 하는 본연의 일이 무엇인지를 아주 쉽게 들려준다. 인간이 등장하고, 그리스로마시대를 거쳐 산업시대에 이르기까지 땅이 어떻게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지렁이가 어떻게 줄어들기 시작했는지 들려준다. 땅을 죽이는 결과를 낳고 지렁이를 도망가게 한 주범은 바로 인간이다. 이기적인 욕심으로 화학제품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땅은 더이상 생명을 잃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는 더이상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지렁이 농장이다. 막대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고 영양분이 많은 흙을 구할 수도 있으며 지렁이에게 좋은 삶의 터전까지 마련해주니, 이제야 사람들이 지렁이가 정말 중요한 이유를 아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찰스 다윈에 이르기까지 지렁이의 중요성을 알고 예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익스피어처럼 지렁이의 중요성에 무지했던 사람도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은 재기가 넘친다. 일찌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를 일컬어 '지구의 창자'라고 했단다. 3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처음 들어보는 인물일 수도 있으니 간단히 설명해주는 젓도 좋겠다.
이 책은 글도 그림도 유쾌하다. 생물의 육신을 분해해주는 미생물과 흙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이 세상 만물의 목숨은 어느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딱딱하지 않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느끼게 해준다. 흔히 징그럽다고만 생각하기 쉬운 지렁이를 주인공이자 화자로 내세워 마치 아이들에게는 친구 하나가 더 생긴 것 같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간다.
생명은 돌고도는 것,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 하나에서 우리 몸 밖으로 나가는 배설물에 이르기까지 이 자연에서 쓰임새가 없는 것은 없다는 철학적인 생각까지 한다면, 과학이나 환경에 대한 근사한 말들이 결코 우리들 사람과 별개의 책 속의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당장 보고 느끼고 몸으로 행하는 것들이란 생각을 하게 될 거다.
<인간은 지렁이로 물고기를 잡지만 지렁이를 먹는 물고기와 물고기를 먹는 인간은 다시 지렁이의 먹이가 된다.> - 햄릿
이 글은 '차례' 앞의 속지에 씌어있는 글인데 햄릿에 이런 대사가 있는지 아리송하다. 아니라면, 풍자적으로 작가가 쓴 대사가 아닐까싶다. 먹고 먹히는 순환의 원리로 잇는 생명고리의 낮은 쪽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물, 지렁이를 집에서 키우는 방법도 책 뒤쪽에 자세히 설명해 두었다. '지렁이농장 만들기'를 할 때 주의할 점은 축축한 정도를 알맞게 유지해주는 것이다. 애완용 지렁이를 기르고 무엇보다 소중한 지렁이응가를 채집해 보시라. 저학년보다는 3.4학년쯤 되야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징그럽기만 한 지렁이가 이렇게 고마운 역할을 하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렁이를 키워보려니 그걸 잡는게 우선 징그러울 것 같다고 한다. 비온 뒤 지렁이를 발밑에서 만나면 밟지 말고 건너가자고 했더니 꼭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아이들 눈이 예쁘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꿈틀이사우루스처럼 저도 게으름 피우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는 주제에선 다소 벗어났지만 나름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걸 느낀 점,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