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라의 멋진 집 - 행복한 그림책 읽기 8
데비 글리오리 글 그림, 양희진 옮김 / 계림닷컴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들에게, 봄, 하면 떠오는 걸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제일 먼저 꺼내는 게 꽃이다. 다음은 씨앗이다. 다른 계절이라고 꽃이 피지 않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샛노란 개나리와 진분홍 진달래를 마치 정답처럼 꺼내놓는다. 씨앗을 생각하는 아이는 좀더 생각이 깊은 아이인 경우다. 

<플로라의 멋진 집>의 원제는 'FLORA'S FLOWERS'이다. 이걸 몇번 혀를 굴리며 발음해보면 데구르르 구르는 공처첨 가볍고 환한 느낌이 든다. 우리말 제목은 깜찍한 플로라가 키워낸 꽃의 진짜 모습에 촛점을 맞추어 옮겨 달았다. 아직은 추상적인 개념이 확실치 않을 6-7세 아이들을 배려하여 괜찮은 옮김이라고 생각된다.

겉표지를 보면 사계절이 모두 보인다. 봄, 여름의 꽃과 단풍잎, 플로라가 목에 두른 목도리, 그리고 시원한 하늘 아래 풀밭에 빨간 화분이 있고 그 안에 세모꼴의 한 귀퉁이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토끼로 보이는 플로라는 머리에 물방울무늬 리본의 머리띠를 하고 손등에 무당벌레 한 마리를 올려놓고 씩 웃으며 보고 있다. 해바라기의 이파리들이 춤을 추고 있는데, 이건 뒤에도 나오지만, 이 그림책에서 가장 동적인 느낌을 준다.

"봄이에요", "플로라네 식구는 아주 바쁘답니다." 로 시작하는 <플로라의 멋진 집>은 꽃잔치에 온 것 같이 마음을 화사하게 한다. 각자 자신의 맡은 일을 하며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두어 먹으며 작은 것으로 충만해 하고 여유롭게 사는, 느긋한 목가의 향기가 난다. 하얀색 여백을 넓게 두고 온기있는 색감으로 단순한 선을 살려 그린 그림이 한 몫을 더 한다. 

플로라의 언니들은 커다란 아마릴리스의 알뿌리 한 개와 분홍색 튤립의 알뿌리 스무 개를 심는다. 오빠들은 상추씨와 해바라기 씨를 뿌리고 무순씨는 물수건 위에 뿌린다. 귀염둥이 플로라는 아빠가 건네주는 작은 화분에 조그만 벽돌을 심으며 포부도 당당하게, 선포한다.

"나는 집을 기를 거야." 

그리곤 벽돌이 잘 자라고 있냐고 가끔씩 묻는 언니 오빠에게 벽돌이 아니라 집이라고 열번이고 말한다. 튤립과 아마릴리스는 무럭무럭 자라 온 책장 가득히 꽃잔치가 열렸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서양꽃이지만 충분히 예쁘다고 느낄 수 있게 풍성한 느낌을 준다. 분홍을 주조로 꽃잎을 살리고 꽃술도 자세히 그려놓았다.

하지만 플로라가 기를 거라는 집은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겨울이 오고 밖에 내놓은 화분에도 눈이 담긴다. 그 뒤에는 아까부터 화분을 점찍어두고 있는 작은새 한마리가 보인다.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갖다놓고 있다. 봄이 다시 오고, 플로라의 화분에서는 집이 피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이다. 그 속에 하얗고 둥근 알도 두 개 보인다. 플로라의 집은 소중한 목숨을 두 개씩이나 품고 있다. 꽃이 그러한 것처럼.

씨앗이라는 작은 것 속에 들어있는 커다란 꿈을 아이와 이야기 해 보면 어떨까. 아이의 눈높이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소 황당한 것까지 들어주어도 좋겠다.  생각이 좀 깊은 아이라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니?, 라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꺼내, 그럼 지금 어떤 씨앗을 심을까?,로 유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씨앗, 아름다운 생각 씨앗, 예쁜 말 하는 씨앗, 책 잘 읽는 씨앗, 잘 참는 씨앗, 음식 골고루 잘 먹는 씨앗......

벽돌이라는 씨앗을 심어 플로라가 키워낸 멋진 집처럼 다소 엉뚱한 발상에서 진지한 생각까지 할 수 있게 유도하면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하기 쉬운 아이들의 생각의 키가 의외로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