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볼일 없는 4학년 창비아동문고 152
주디 블룸 지음, 윤여숙 옮김, 오승민 그림 / 창비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초등 중학년의 어중간한 연령, 동생이 하나쯤 있고 완전 고학년 취급도 못 받고 저학년이 아니라 어리광 부리기도 그렇고, 학습의 부담은 커지고 어른들의 기대치는 점점 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이 4학년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피터는 아주아주 별난 동생 4살 짜리 퍼지와 평범한 부모님과 함께 산다. 시종일관 퍼지는 피터에게 방해꾼이고 걸림돌이며 애물단지다. 하지만 엄마는 어린 동생 퍼지만을 위하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생과 형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는 피터에게 동생의 잘못에도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마나 아빠가 은근히 믿고 기대하는 대상은 형인 피터이다. 피터는 그런 어른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이해하려 든다. 내심 가지는 불만과 아쉬움을 감추고 별로 표현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생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서 언제나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다. 피터가 애지중지하는 거북이를 퍼지가 삼켜버린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거북이가 죽어없어지고 자신의 마음이 그리 아픈 것 따위는 어른들의 관심 밖이다. 그것을 삼킨 어린 동생만을 생각하는 엄마가 밉기도 하다. 자신의 슬픔은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피터에게 새로운 선물이 안긴다. 아빠가 강아지를 사온 것이다. 피터는 강아지에게 '거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이제 동생이 다시는 자신의 애완동물을 삼켜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동화의 사건이라면 집안팎에서 동생이 일으키는 사고들의 연속이다. 동생이 있는 아이라면 날마다 그런 동생을 봐주어야하는 형의 입장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친지들이 모여도 어린 동생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 속이 상했던 경험이 있는 맏이들이면, 난 동생보다 관심과 사랑도 못 받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디 블룸이 이런 제목을 지은 건 반어적 표현으로 보인다. 가만히 지켜보면 피터는 별볼일 없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님에겐 소중한 맏이로, 동생에겐 기대고 싶은 형으로, 다른 어른들에겐 예의바르고 마음도 따스한 좋은 아이로, 친구들에겐 그래도 너그러운 아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아이다. 관심을 못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는 어른들이 믿고 바라보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강아지를 선물하는 아빠를 보면 역시 힘을 좀더 실어주는 대상은 큰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큰아이라는 위치에 선택적으로 있는 게 아니므로, 그에 따른 책임감이 함께 주어지므로, 그 아이에게 힘을 조금더 실어주고 싶은 게 보통의 부모마음이다. 아이들과 부모의 마음을 잘 드러내어주고 있다.

이 동화는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된다. 피터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일기글을 공개하는 것처럼 좌충우돌, 알콩달콩, 생활 속 크고 작은 일들이 피터의 눈높이로 펼쳐진다. 그러니 인물이나 배경면에서도 생활동화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일상적이다.
가히 엽기적인 퍼지의 말썽은 우리 정서와 다소 다른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피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라면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의 임무, 책임, 권리 그리고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고 뿌듯함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는 동화이다.

한번도 이런 말을 드러내놓고 하지 않고, 우당탕탕 난리를 치며 하루하루 보내다 어느 순간 의외의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책제목을 그렇게 시큰둥하게 꼬아 놓은 것도, 고리타분하게 가르치려들지 않으려는 작가의 숨은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 동화는 이런 부분에서 아직 미흡한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감각이 부럽다. 이 동화는 위트있고 아름다운 글이 마음에 남는 <백조의 트럼펫>을 번역한 윤여숙님이 옮겼다. 삽화는 간결하며 동양적인 얼굴로 인물을 그려놓아 우리 아이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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