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길
베르나르 포콩 사진, 앙토넹 포토스키 글,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춘의 시기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사는 내게, 이 사진에세이의 제목은 내 속에 들끓고 있는 무엇을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블라인드 틈새로 내다보는 야경처럼 가려져 있는 듯한 표지 사진의 이미지부터 마음을 설레게 한다. 놀라운 건 이 사진들은 모두 고가의 카메라에 온갖 기교를 부려 렌즈에 담은 풍광이 아니라, 그때그때 구입한 일회용카메라로 담은 풍광이란 점이다.

일회성... 어쩜 그런 것이 청춘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그외에도 이곳의 사진들을 보며 느껴지는 모든 건, 황량함, 무소속, 거친 갈망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화장실 벽 옆에서 벌이는 한판 '테크노음악과 먼지의 비현실적인 축제'같은 것이기도 하고 제몸을 가릴 줄 모르는 콘크리트건물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디서든 담을 수 있는 문명과 질서의 세계가 아니라, 뜨거운 모래바람과 태양의 입맞춤이 있는 외곽과 무질서 속의 편안함의 세계다.

어린시절 즐겼던 꿈과 마법의 유희를 회상하며 즐거워하고, 눈에 튀어 들어온 자몽 알갱이의 신맛을 눈으로 맛보는 청춘의 상큼함이 길 위를 걸으며 '사는 게 그런 거야' 라는 말을 되뇐다. 그래, 여행을 떠나면서 '우리는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우리는 출발할 때 이미 알고 있'다. 글을 쓴 청춘, 앙토넹 포토스키처럼 욕망으로 들끓던 청춘은 어느새 몸만 남았다. 무엇에도 그리 감정의 변화가 크게 일렁이지 않는다.

하지만 <청춘. 길>의 사진들은 가지 못하고 지나쳐온 청춘의 시간들에 있었던 또 다른 길을 갈망하게 한다. 사실 낯설다고 하는 느낌은 눈여겨 보지 않았고 마음에 담지 않았다는 얘기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주지 않은 눈길로 그것들은 한낱 박제가 되어버렸다. 이곳의 풍경은 살아있다. 검은 밤바다의 파도가 용트림이라도 하는 것 같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때때로 동물들의 가련한 삶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우리의 눈물을 다정한 그 무엇에 고정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누렇고 흐릿한 배경에 가늘게 떨며 걸려있는 백열등은 청춘의 눈빛일까? 다정한 눈빛을 소유한 청년은 어느 노파에게 거금을 제물로 바치고 그 보다 20년 정도를 더 산 사진가는 어느 조촐한 공동묘지를 넓고넓게 담는다. 묘지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아담하고 예쁘장하다. 청춘의 길 위에 묘지가 있음에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청춘. 길>은 사진과 글이 꼭꼭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게 매력이다. 사진은 사진대로 흘러가고 글은 글대로 흘러간다. 책장의 양면 가득 펼쳐지는 사진들은 이전에 내가 내 마음의 렌즈에 담아보려 하지 않았던 풍경들이다. 이런 비주류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풍경을 건너고 있다. 베르나르 포콩은 사실 청춘의 길을 지나온 사람으로 풍경을 보는 눈에 이글거림을 숨기지도 않을 뿐더러 그윽하다. 발자국이 제멋대로 나 있고 가늘고 굵은 돌멩이가 박혀있는 텁텁한 흙바닥에 나란히 꽂혀있는 두 개의 시멘트조각. 모양도 제각각이며 거친 이 조각을 렌즈에 이토록 멋지게 담다니. 길은 달라도 모두 살아 꿈틀거리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커브길을 하나 돌고, 언덕이 바다를 향해 갑작스레 기울어지는 내리막길을 지나고 나면 시작된다.'

청춘의 사내는 어느새 중년의 아름다움을 예감하고 있는 걸까? 청춘은 상대적이다. 언제나 지나온 시절은 아쉬움이 남는 청춘의 길이다. 그 청춘의 아쉬운 한 자락을 부여잡고 오늘도 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