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 우크라이나 민화 내 친구는 그림책
에우게니 M.라쵸프 그림, 배은경 옮김 / 한림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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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꼭 한번 더 보고 싶은 그림책이 <장갑>이다. 우크라이나의 민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이 그림책은 얇은 두께에, 다소 옛스러운 꽃문양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장갑부터 책표지에서 볼 수 있다. 무슨 장갑 안에 동물들이 들어앉아 있고 사다리에 기둥받침까지, 마치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연상하게 한다. 그 아래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보기만 해도 아주 추운 날씨란 걸 짐작하게 한다.

세계 그림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라초프의 <장갑>은 그림책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을 고루 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일로 꼽고 싶은 것은 매력적인 그림이다. 손목 부분에 털이 달려있는 가죽장갑(아마도) 한 짝이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마치 이 장갑 한 짝은 목숨있는 생물인 것처럼 조금씩 탈바꿈을 하며 자란다. 숲 속 눈길 위에 홀로 떨어진 장갑 한 짝은 어린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숲 속에서>나 <또 다시 숲속으로> 또는 <숲 속의 요술물감>에서 처럼 숲에 홀로 들어온 아이는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멋진 판타지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모두 감당하진 못하는 자신의 능력이며 관심이며 소망이다.

아이들은 눈이 오면 강아지마냥 팔짝거리며 좋아한다. 추운 겨울 흰 눈이 쌓인 숲 길에 남은 아이는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겨울 숲 속에서 생쥐나 개구리를 만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아이의 상상이 미치는 범위는 그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먹보 생쥐, 팔짝팔짝 개구리, 빠른 발 토끼, 멋쟁이 여우, 잿빛 늑대, 송곳니 멧돼지 그리고 느림보 곰까지... 갈수록 덩치 큰 동물들이 차례로 장갑 안으로 들어온다. 그 때마다 변해가는 장갑은 탄복할 정도다. 널판지로 장갑의 입구를 넓히고, 창문을 만들고 출입문에 종을 달고, 나중에 생쥐는 지붕(?) 위에 올라가기까지 하며 다른 동물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 따스한 장갑과 동물들의 마음이 닮았다.

<장갑>의 그림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착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그럼직한 상상을 유도하고 있다. 전혀 거부감이 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매료된다. 멧돼지가 들어가고부턴 장갑의 실밥이 터지고 있다. 꽉 찼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덩치 큰 곰을 한쪽 구석으로 들어오게 하는, 동물들은 아이의 마음을 꼭 닮아있다.

곰이 들어가 장갑이 터졌을까? 라초프는 여기서 장갑의 변신을 멈추고, 원래의 장갑 한 짝으로 불현듯 돌아간다.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장갑을 보고 할아버지보다 앞장 서서 달려온 강아지가 멍멍멍 짖고, 동물들은 장갑을 빠져 나와 숲 속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짖는 소리는 판타지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종소리같다. 재치있게 끝내는 마지막 장이, 판타지의 달콤함과 자유로움을 못내 아쉬워하게 만들어, 자꾸 <장갑>을 보고 싶게한다. 날마다 자라는 오동통하고 인정 많은 그 아이를 자꾸 보고 싶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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