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파브르 - 늦깎이 위인전시리즈 03
박진아 지음 / 세이북스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고정욱 선생이 기획, 감수한 늦깎이 위인전 시리즈는 참 밝은 인상을 준다. 표지에서부터 귀염성이 있고 부담이 없다. 저학년 위인전은 어딘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 많았는데, 이 위인전은 초등 저학년이 인물이야기에 다가가기에 마춤이다. 글의 분량이 많지 않고 행간도 넓고 여백이 많아 눈이 시원하다. 책이라면 우선 문자의 양에 질려버리기 쉬운 저학년들에게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 수채삽화도 그 차지하는 몫을 적지 않게 하여 내용전개를 따라가기 쉽게 해두었고 삽화 자체의 인상도 꽤 맑다.

늦깎이 위인전 시리즈의 기획 의도가 말하고 있듯이, 그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평범과 비범 사이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인 것으로 이끄는 길이, 이 책에는 간결한 내용의 글로 들어있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원한다면 실망할 수 있는 작은 책이지만, 이 책은 한 위대한 늦깎이 위인에 대해 아이들이 가지는 호기심의 가지를 충분히 벋어나가게 할 만하다. 평범하달 수 있는 한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발견하여 키워나가는 과정과 자신의 삶을 비범한 것으로 만드는 집중력과 끈기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의 결실은 늦게, 아주 늦게 맺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눈 앞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인생의 기다란 줄기를 꼭 붙잡고 열심을 다 하면 기회는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앙리 파브르>를 잘 읽히게 하는 장점은 동화구연을 하듯 다정한 입말로 쓰인 문체에 있다. 옛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같은 입말과는 다른 것이, 어린이 청중을 앞에 두고 차근차근 약간은 예의를 갖추어(거리를 두어) 또박또박 들려주는 어조에 있다. 파브르의 어린시절에서 초등학교 시절, 그리고 중학교 시절, 이런 식으로 인물의 성장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조금 더 작은 글씨로 들려주는 한 덩어리의 글이 또 장점이다.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못한 저학년 아이들에게 이 글은 간간이 주의를 환기시키고, 내용을 잠시 정리하는 시간과 그 다음에 펼쳐질 인물의 이야기에 한껏 집중하게 만든다. 그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마지막 문장이 그 역할을 단단히 맡는다.

거의 한 쪽 걸러 한 장면씩 나오는 화사한 색감의 삽화는 무대 뒷면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슬라이드 영화 같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선하다. 지루한 설명이나 지식보다는 인물의 일화를 중심으로 엮고 있어, 군더더기는 없이 글의 전개가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군데군데 파브르가 관찰하고 연구한 곤충 중 몇 가지와 가루받이, 간단한 과학실험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에 대한 설명을 쪽지처럼 곁들여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헤어나지 못한 가난과 사람들의 질시, 당시 사회적인 편견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란 슬픔을 견디며 무려 30여년에 걸쳐 쓴 <곤충기>를 읽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를 만날 수 있다. <곤충기> 제1권은 '율리우스'라고 이름 붙인 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율리우스는 악성 빈혈로 열다섯 살에 세상을 뜬 아들의 별명이다. 파브르는 <곤충기>를 시작하는 말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름다운 벌들에게 네 이름이 붙여져 언제나 이 책 속에 남아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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