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나무 풀빛 그림 아이 15
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숀 탠이란 호주그림책 작가는 <잃어버린 것>에서 먼저 만났다. 낯설고 기이한 그림의 마력에 몸을 떨며 그의 다른 작품을 찾다가 <빨간 나무>를 구입한 건 작년이다. 난 보랏빛을 좋아한다. <빨간 나무>의 표지는 그런 보랏빛이다. 종이배 위에 우울한 얼굴을 내밀고 앉아있는 여자아이는 물 위에 떠있는 빨간 나뭇잎 한 장을 바라만 보고 있다. 아니, 발견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빨간 나뭇잎은 처음부터 아이의 방에, 침대 머리맡 액자 속에 들어있다. 아직은 그걸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아이는 실컷 앓고 나서 그걸 찾는 눈을 뜨는 걸까! 빨간 나무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라고 작가는 그림의 복선을 깔고 있다.

이 그림책을 여섯 살 작은 아이랑 함께 보고 읽었다. 아이와 내가 다른 세대의 눈으로 보는 이 한 권의 그림책은 나이를 초월한, 인간의 마음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어쩔 수 없는 열병과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증명해주었다. 다 보고 난 뒤, '빨간 나무는 뭘까?' 나의 이런 물음에, 아이의 고 조그만 입에서 희망이란 말이 서스름없이 튀어나오는 걸 보고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기뻤다. 어른의 잣대는 녹슬고 우그러져있는 지도 모르겠다. 투명하고 반듯한 아이의 눈은 어둠과 몰이해와 절망과 그 모든 낙담 속에서도 언제나처럼 빨간 빛을 발하고 있는 나뭇잎 한 장을 어렵지않게 발견하는 것 같다.

도시의 우울한 시멘트빛, 귀머거리 기계 같은 세상, 불운은 한꺼번에 터지고, 후회라는 자물쇠로 나를 걸어잠그고 그냥 지나쳐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바보같은 나, 내가 누군지, 내가 있는 곳은 어딘지도 모르는 채, 희망의 조각 하나 줍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가는 날... 그때 문득 바로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 바로바로 빨간 나무. 마지막 장면에서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크게 자라있는 빨간 나무는 만지면 빨간색이 손에 그대로 묻어날 것처럼 광채가 난다. 시종 일관 펼쳐진 채도가 낮은 글과 그림들 속에 있어 그 빛이 더욱 눈부신다.

이 그림책은 나의 고정관념 중의 하나를 뒤집어준 책이다. 그림책이라면 떠올리는 그림과 색채, 내용과 주제까지, 대담하고 깊은 내면의 그림들이랄 수 있다. 스쳐지나가는 무의식의 단상들, 존재함이란 이유만으로 가지는 내면의 모호한 이미지들을 <빨간 나무>는 손에 잡힐 듯 그리고 있다. 신문을 오려붙이기도 하고, 크고 작은 액자그림에, 글은 아주 적다. 글자의 크기나 배열도 그림의 힘을 더 살려준다.

그림책의 주제로 맞을까?, 하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난 어른이고 아이고 밝게만 보이는 사람을 믿지않는다. 사유의 깊이도 내면의 솔직함도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밝게 살려고 노력하고 남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는 건 미덕 중에서도 미덕이지만,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는 밝음보다는, 차라리 고민하고 앓고 내 보이고 치유받는 것이 솔직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아이들도 우울하고 절망하고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이란 빨간 나무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바로 너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하고 진정으로 기쁘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빨간 나무를 광채가 나게 크게 키워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빛을 발하며 우뚝 서게 하는 건 자신의 몫이란 걸 느끼면 좋겠다. 그렇게 깊은 눈빛으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좋겠다.

어쩌면 이 그림책은 인생을 먼저 살고 있지만 어떨 땐 아이보다 소심하고 좁은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는 어른에게 더 권하고 싶다. 절망이란 주관적이고 때론 사소함에서도 대책 없이 온다. 그래서 난 그림책이 좋다. 0세에서 100세까지 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보며 웃고 울고 종알대다 문득 탁 치고 들어오는 무언가를 감지하는 순간의 희열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