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마들린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7
루드비히 베멀먼즈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들린느는 귀엽고 앙증맞은 여자아이다. 쥐나 호랑이를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 씩씩한 아이이기도 하다. 항상 변함없는 표정과 자태로 온화하고 근엄한 기숙학교 수녀선생님을 놀라겐 한 첫번째 아이이기도 하다. 날마다 같은 날을 보내는 그런 마들린느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다른 아이들에게도 수녀선생님에게도 어떤 일이 생기는지, 그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 보고나면 허물없는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아이들은 샛노란 색이 참 잘 어울린다. 노란색의 밝음, 귀여움, 순수함, 가벼움, 희망, 자기만족, 이기심 같은 이미지들이 아이와 잘 어울려서 그런가 보다. 마들린느를 포함한 열두 여자아이들은 샛노란 색으로 채색되어있다. 수녀선생님의 검은색 수녀복이 아이들의 색과 대비되어 있다. 이 색들의 경계에는 화사한 붉은 빛을 띤 꽃송이가 소담스럽게 꽂혀있는 꽃병 하나가 있다. 꽃병을 전환점으로 열두 아이들의 표정과 동작이 바뀌어있다. 그걸 발견하고는 어찌나 웃기던지, 막 웃음이 나왔다. 꽃병 이전의 그림에 '두 줄 나란히'란 제목을 붙인다면, 그 이후의 그림에는 '맹장수술 해 줘'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다.

고풍스러워보이는 프랑스의 어느 기숙 학교에 다니는 열두 아이들은 수녀선생님이 잘 가르쳐놓은 대로, 양치질을 할 때도, 학교 밖을 걸어다닐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두 줄 나란히' 한다. 엄격한 규율과 질서가 몸에 배인 것 같고 아이들은 누구하나 그걸 흐트리는 아이가 없다. 표정도 하나같이, 만족스러운지, 밝다. 그래도 아이들의 감정까지 딱딱한 규율 속에 갇혀있는 것 같진 않아 다행이다. 기쁜 걸 알고, 슬픈 걸 알고, 불쌍한 것도 느끼는, 맑은 물을 닮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수녀선생님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마들린느가 맹장염으로 배가 아파 울고 있고, 한밤의 소동이 벌어진다. 마들린느는 수술을 받고 꽃이 있는 병실에 입원하여 있다. 열흘이 지나 선생님은 열한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꽃을 사 들고 병실을 찾는다. 방 가득 있는 장난감이나 인형 따위보다 아이들에게 더 놀랍고 인상깊었던 건, 마들린느가 당당하게 옷을 걷어 보여주는 맹장수술 자국이다.

그 날 학교에 돌아온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르다. 양치질을 할 때도 '두 줄 나란히'가 아니고 표정도 '하기 싫어 죽겠다'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전에는 양팔을 가지런히 내리고 반듯이 눕던 아이들이 팔을 머리 쪽으로 돌려 활개치듯 누워 있다. 표정도 아직 자기 싫다는 듯 시큰둥하다. 그러더니 한밤중 떼울음이란! 무슨 일이 또 생겼나, 놀라서 뛰어 온 수녀선생님에게 다 같이 맹장수술해 달라며 울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꼬마 아가씨들을 부드럽게 달래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조용히 잦아드는 수녀선생님의 얼굴과 그 뒤로 빛나는 별들. 글자크기도 점점 숨을 죽이고 있다. 수녀님이 놀라 뛰어가는 동작은 쌔앵~하고 바람소리가 들릴 듯하고, 아이들이 우는 모습은 그냥 그대로 귀엽다.

<씩씩한 마들린느>의 그림과 글은 무게있고 따뜻하면서 유머러스하다. 노랑과 검정 외에 바깥 세상의 색은 다양하고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다. 노랑과 검정의 색으로 표현된 그림은 윤곽선 처리도 아이의 그것처럼 단순하고 덧칠이 없다.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그림 아래에 한 두 줄 정도로 리듬감있게 실어 놓은 글은 노랫말처럼 반복되는 어구가 있어 더욱 경쾌하게 읽힌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걸 자세히 보여주는 그림책이라서 그림을 아이가 볼 수 있게 크게 펴서 보여주며 글은 엄마가 리듬을 살려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다.

아이들은 어른이 줄 그어놓은 선에 딱 맞추어지질 않는다. 만약 그런 아이가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면 그 아이가 참고 있을 스트레스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줄 알면서 '두 줄 나란히'를 툭 하면 잔소리같이 늘어놓는 엄마다.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자상함이 미덕으로 마음에 남는 그림책은 그래서, 흐려진 내 마음의 창을 말갛게 닦아주는 소중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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