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전통문화 즐기기 1
청동말굽 지음, 박동국 그림, 한영우 감수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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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작년 여름(3학년) 서울로 문화재 답사를 갔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숙모에게 동행을 부탁하고 부산에서 혼자 먼 길을 보냈다. 아이가 간 곳은 서대문 형무소, 수원 화성, 창경궁, 종묘를 비롯한 몇 곳과 경복궁이었다. 아이는 거을린 얼굴로 알차게 익은 모습을 하고 돌아와 나를 기쁘게 하였다. 그 중 화성과 경복궁을 제일 맘에 들어하며 사진을 붙이고 글을 써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나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함께 들떠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라는 '전통문화 둘러보며 즐기기' 시리즈가 나온 걸 보고 무척 반가웠다. 경복궁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지은 궁궐인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오랜동안 빈 터로 남아 있다가 고종 1865년 흥선 대원군에 의해 백성의 피와 땀으로 재건되었다. 오늘날 우리 것에 대한 자존심과 긍지를 생각하면 역시 역사적 평가는 세월이 흐른 뒤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 점점 더 우리 것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우리 것에 대한 재평가와 재해석도 갖가지 눈높이에 맞춰 나오고 있어 좋은 일이다. 특히 서양 것에 더 친숙한 아이들에게 우리 것은 단지 우리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를 조심스레 펼쳤다. 마치 궁궐에 들어갈 때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듯 했다. 먼저, 근정전을 가운데로 두고 멀리서 조망한 그림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책장을 넘기면 강녕전(왕의 침전) 주위로 어슴프레 날이 밝아지는 그림이 맑은 기운을 불어 준다. 계속 이어지는 그림은 고증을 거쳐 세밀하고 풍부한 색감으로 그려놓았다. 기와, 잡상, 매회틀(왕이 대변을 보는 통), 왕의 여러가지 의관, 자경전의 아름다운 굴뚝 문양과 꽃담의 문양들까지 퍽 섬세하고 곱다. 자경전 꽃담을 배경으로 아이가 찍어 왔던 사진 옆에 아이가 적어 놓은 글귀는,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만져보면 평면이다' 였다. 대비마마의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들이라고 한다.

이 책은 책을 보는 사람이 왕이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더 즐겁다. 연령에 상관없이 가감하며 보면 더 좋겠다. 아이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임금은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임금을 따라가보면 하루가 바쁘다는 걸 알 수 있다. 효를 몸소 실천하는 백성의 아버지로서, 아침 일찍 대비전 문안 인사를 마치면 편전에 나가 나랏일을 돌보고 경연을 하고 아침 수라 후 조회를 한다. 낮것을 드시고 낮 경연을 하고 오후 세 시가 되면 왕은 당상관이 적어 승정원을 통해 왕에게 올리는 군사암호를 허락하여 날마다 다른 암호를 정해준다. 이것은 다시 병조에 전해져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전해진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임금은 짬을 내어 가족들과의 시간을 가진다. 주로 투호를 하고, 격구를 좋아하는 왕들이 많았다고 한다. 경회루 그림이 사진 못지않게 선선하다.

저녁 경연은 해가 지기 전 사정전에서 한다. 경연 후 강녕전에서 저녁 수라를 마치고 나면 자경전에 들러 대비께 저녁 문안을 드린다. 책 한 귀퉁이에 얌전히 있는, 우리 옛 건물에서 찾기 쉬운 전통 문양인 단청의 빛깔이 참 곱고 단아하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다. 밤 늦은 시각 임금이 교태전에 들어 잠자리에 들면 '경복궁 안의 모든 것들도 잠이 든'다. '교태'는 부부가 만나 아이를 잘낳기를 바란다는 뜻이라 한다. 궁궐에서는, 쇠와 불을 먹는 상상의 동물인 불가사리나 불귀신을 잡는 드니, 불을 막는 힘이 있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목조건물이라 그럴 것이다. 제일 뒷 장에는 근정전을 좀더 가까이서 보고 크게 그려놓았다. 근정전 앞의 품계석에 앉아 있던 아이의 사진이 생각난다. 아이는 근정전 앞 마당은 사방이 담으로 둘러쳐져 있어 소리가 퍼지지 않고 잘 들리게 해 놓았다고 덧붙인다.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그려 보면 궁궐에 깃든 조상의 슬기와 멋이 내게 스미는 것 같다. 간명하면서 친절한 설명과 살아있는 그림이 상상의 맛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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