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공주 자두 - 혼자 읽기 좋은 책 8
보리스 무와사르 지음, 아나이스 보즐라드 그림, 김주경 옮김 / 도서출판 문원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자두빛 책표지에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엎드려있다. 양탄자 위에서 두꺼운 책을 베게 삼아 손가락을 빨며 세상에 둘도 없이 느긋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자두'다. 아빠의 이름 호두다. 원문은 보지 못 했지만, 번역이 참 재미있게 된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면 자두빛 스케치 삽화가 시선을 먼저 끈다. 그림이 꽤 개성있다 싶어 보니, 아나이스 보줄라드의 그림이다. 그림책 <전쟁>에서 특이한 분위기의 그림 때문에 눈여겨 봐 둔 이름이다.

주인공 이름이나 삽화 못지않게 <모나코 공주 자두>의 글은 참 경쾌하다. 짧은 호흡으로 읽히는 문장도 그렇고 아빠와 자두의 재치있고 톡톡 튀는 대화을 듣는 건 또 다른 재미다. 게다가 자두의 엉클어진 머리카락에 갖가지 꾸밈없는 표정과 동작도 유쾌한 터치로 그려져있다. 자두의 아빠 호두씨처럼 특별한 아빠를 만나는 것도 썩 반갑다. 우선 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점이 그렇고, 최대한 그 말에 호응하여 어린 딸이 뭔가 스스로 해보고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 또한 그렇다.

잡지 읽기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자두는 어느 날 자신도 모나코 공주가 되고 싶어한다. 독서를 즐기는 아빠는 그런 딸에게 공주가 되기 위한 수칙들을 말해주며 실천에 옮기도록 도와준다. 딸이 이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하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운 일들을 멋지게 처리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아빠는, 딸의 소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슬기로운 방법으로 깨닫게 한다.

하지만 작고 영특한 자두가, 아빠의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마지막 방법을 역이용하여, 자신은 결국 대부분의 소녀들처럼 영원히 평범한 시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비장하게 자신이 내린 결론을 선포하는 부분은 귀엽기 그지 없다.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애를 쓰는 남자들 중 실제로 성공한 사람이 몇몇 있더라고, 자두는 잡지에서 읽은 낡은 기사 이야기를 꺼내며 공주에 대한 미련을 조금은 가지고 있지만, 영리한 우리의 자두는 다시 아빠 곁으로 와서 거침없이 묻는다. 그러면, 왕족이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아빠들은 딸에게 어떤 것을 상속해 줄 수 있냐고?

이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빠 호두씨는, 정말로! 드디어 망설이지 않고 확신에 찬 말투로 아빠는, 왕관이나 무거운 직함 같은 것들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쓸모있는 것들을 물려줄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건 바로, 아빠의 책이 아니라, 독서하는 취미이며 그것은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하고 훌륭한 재산이란다.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 앞에서도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언제나 읽기 전에는 굉장히 두껍게 느껴지는 법이긴 하지만, '진짜 책' 읽기를 말하는 거라고. 아빠가 자두의 나이 때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그 두꺼운 책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 우리의 앙큼하리만치 당찬 자두는, 이제 점점 숙녀로 커가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적어도 아빠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아직은 책을 베게 삼아 꿈나라로 가는 경우가 더 많아도 말이다.

아빠는 성급한 훈계나 설교로 자신의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욕구를 이해하며 아이가 소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평범하지만 쉽지 않은 길을 지혜롭게 일러준다. 너무 앞질러가면서 아이를 힘들게 하는 어른이 아니라 반보 정도만 앞서가며 적절히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어야겠다. 특히 여섯 딸아이의 아빠인 작가가 털어놓은 '지혜롭고 당당하게 세상살기'에 대한 이야기라, 그 말 속엔 딸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나코공주와 결혼하여 소위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는 세상의 남자아이들에게도 이 책을 똑같이 권하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5-26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8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