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고금란 지음 / 여성신문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고금란이란 작가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이 소설집을 찾아 들게 된 걸, 어쩌면 내 삶의 전환점에서 밝은 빛을 향하여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계기로 맞아들여야할 것 같다. 부산과 근교의 지명이 많이 나와 더 친근하게 읽힌지도 모르겠다.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라는 단편 이외에 아홉 편의 단편을 더 담고 있는 이 소설집은 시종, 강한 빛의 세상으로 온 몸을 던지기 직전의 상처입은 사람들의 깊은 그늘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 방식은 입체적이다. 인물의 과거와 현재가, 세밀하게 그리는 심리와 갈등 묘사와 함께 자유롭게 넘나들며 보여진다. 과장하지않고 인물의 심리에서 보이는대로 그리는 풍경묘사도 인상적이다.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그 사람의 내면여행을 따라 가다가 연민의 정이 담뿍 묻어나게 하는 식이다. 내면여행은 인물들 각각의 갖가지 연유에서의 짧은 여행길을 따라 형성된다. 인물들은 모두 다양한 얼굴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직업도 연령도 다양하여, 작가가 이웃들을 바라보는 눈이 꼼꼼하고 다정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집에 있는 이야기들은, 강한 빛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삶이 팍팍하고 어두워 막막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겉으론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각자의 내면에 드리워있는 '깊은 그늘'을 박차고 빠져나오려 안간힘쓰는, 인물들의 '짧은 여행'이 이야기마다 줄기를 이룬다. [성소], [문 밖의 여자], [썰물]은 여자주인공의, 나머지는 남자주인공의 빛으로의 여행이다. 사소함과 소모적인 애증으로 속 끓이고 사는 나는 빛으로의 여행이 내가 사는 이유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통속적인 비유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말이다.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의 가난한 자동차샐러리맨이 빛으로 가는 여행을 위해 찾는 곳은 동전 몇 닢으로 갈 수 있는 시내의 '터널'이다. 얼마나 사소하고 가슴 시린지... [성소]에서 '때돈'을 버는 여주인공의 고해성사같은 통곡이 비로소 그녀를 그늘에서 해방시켜주는 마지막 장면도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갑자기 그 수많은 물방울들이 긴 세월 동안 안으로 가두어 놓았던 내 눈물이라 여겨지면서 가슴 속에 일고 있던 소용돌이가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 167쪽

[문 밖의 여자]의 수하는 나랑 약간은 비슷한 그늘을 가지고 있어 더 공감되었다. 모순덩어리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불현듯 그녀는 일행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수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한 발자국도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 237쪽

길고 긴 컴컴한 터널 속을 가슴치며 더듬다가, 눈부시게 밝은 빛의 세상으로 쑤욱 빠져나오는 이미지, 이것이 이 소설집이다. 각자의 무게로 지치고 힘든 사람들, 바로 우리에게, 이웃의 평범하고도 비범한 있음직한 이야기들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한줄기 강한 빛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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