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커트니 비룡소의 그림동화 29
존 버닝햄 글.그림, 고승희 옮김 / 비룡소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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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글과 여백을 많이 두는 그림 속에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는 존 버닝햄의 그림책은, 그래서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의 과감히 생략한 듯한 처리와 여운이, 책장을 덮고 몇날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한 숨기고 싶은 듯 마지막에 살짝 그려놓은 그림이 뭔가를 강하게 말하고 있다.

늘 그렇듯 기대와 호기심으로 이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펼쳤다. 그런데 시종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개가 아니라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특히 두 분 할머니들이었다. 젊었을 적의 꽤 아름다웠을 미모는 예순 중반을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변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놀아주는 걸 아주 좋아한다. 할머니만 보면 뭔가 놀이방식을 들이밀며 놀자고 조른다. 젊은 엄마는 뭐다뭐다 핑계를 대고 잘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는 할머니는 요술장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할머니 손을 거치면 뭐든 뚝딱뚝딱 신기한 게 만들어지고 아이가 원하는 걸 잘도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데려가는' 늙고 지저분한 똥개가 떠돌이 개가 된 것은, 아마도 젊은 부부들이 집에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커트니가 어느 날 끌고 들어온 여행가방에 적힌 세계 곳곳의 도시 이름과 새로운 집에서 식구들이랑 같이 지내면서도 갖가지 집안 일과 아이돌보기까지 하는 모습이 내 맘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젊은 부부의 눈치를 살피며 집안 일을 하고 아이까지 키운다. 우리 아파트 공원에는 이른 아침이면 할머니들이 나오셔서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매일 볼 수 있다. 커트니가 공원에 나가서 다른 개들을 만나기도 하는 모습이 그 고요한 풍경과 닮았다.

우리도 세월이 더 가면 늙어가겠지. 손자손녀들에게라면 끔벅하시는 네분 할머니 할아버지. 깨끗하고 예쁘고 편리한 것만 찾는 젊은 엄마아빠. 내 아이들과 내 집이 제일 소중하듯 그 뿌리를 잊지 말아야겠다. 결국 우리를 이만큼 자라게 한 건 그 분들이 실어주신 정신적인 힘이라 생각된다. 조용히 자식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고 어려울 때면 용기와 지혜를 주시는 분들이다.

'개를 잃어버렸어요. 우리 커트니는요, 나이가 아주 많고요, 눈썹도 굉장히 진해요. 바이올린도 켤 줄 알고요, 저녁밥도 진짜 맛있게 지을 수 있어요. 또, 마술놀이를 하면서 아기랑 놀아 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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