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루카 풀빛 동화의 아이들
구드룬 멥스 지음, 미하엘 쇼버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루카 루카>는 파니라는 4학년 여자아이의 비밀 일기장 같은 책이다. 그 또래 아이들이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겪음직한 알콩달콩한 마음의 파도를 따라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특히 여자아이의 마음에 촛점을 맞추어, 이 고백록은 섬세하고 변주가 많은 현악곡 같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차고나가는 힘 또한 당차고 야무지다. 다소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인정하려하지 않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좀더 밝은 쪽으로 자연스럽게 봐 주어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독일의 옛이야기 '개구리 왕자'는 성적인 암시를 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개구리 왕자'라는 '웃기는' 연극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개구리 왕자의 한 대목으로 맺는다. 특이한 점은, 개구리 왕자 역할은 파니가 맡고, 개구리 왕자에게 입맞춤을 해줘야하는 공주 역할을 남자친구 루카가 한다는 점이다. 이 순간부터 파니는 이성친구의 입맞춤만을 기다리는 개구리가 되어 샘물 속에 들어앉아 있는 꼴이다. 파니는 '통통한 시간'을 루카와 함께 보내며 달콤한 감정에 한동안 빠져 지낸다. 구드룬 멥스의 심리묘사는,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을 것 처럼, 기차게 짜여진 거미줄에 걸려있는 것 같다.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파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방학을 각자의 방식으로 지내고 돌아온 이들의 사이에는 묘한 틈새가 생긴다. 이제 루카가 관심을 가지는 것과 파니가 여전히 매달려 있는 종류가 다르다. 이런 갈등 단계에서 작가는 여자 혹은 남자에 대한 편견을 담고있는 건 아닌지, 읽기에 조심스러웠다. 남자는 대개 그래, 혹은 여자는 아무래도 그렇지, 따위의 생각이 내비치는 것 같아 마음이 약간 불편했다. 여자와 남자의 타고난 생리나 성향 정도로만 본다면 그런대로 넘어갈 만하다.

그러나 파니의 고백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마음 속에 들어차 있는 돌멩이를 꺼내 없애버리는 방식이 신나고 건강하다. 일등공신은 부모님이다. 처음부터 알면서 넉넉한 웃음으로 지켜봐주신 엄마는, 또다른 루카가 생길 거야, 슬픔은 금방 없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린다는 말로 파니에게 든든한 위로가 된다. 아빠가 웃기는 말투로 읊은 개구리 왕자의 한 대목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은 부모님이란 점에서 파니에게 안정감을 준다. - '주인님이 개구리가 되어 샘물 속에 들어앉아 계실 때, 너무도 마음이 아파 끈으로 제 가슴을 묶어 두었지요.'-

이런 소재의 동화는 대개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좋은 사이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루카 루카>는 여자-여자, 남자-남자로 이야기를 맺는다. 표면상으론 그렇다. 그러나, 파니는 이제 남자친구 루카만을 좋아하여 어찌할바 모르고 기다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남녀로 구분지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사소한 것도 잊지 않고 함께 나누며, 서로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는 친구를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진다. 그런 친구가 우연히 휴가지에서 만난 여자친구일 따름이다.

단숨에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 샘물 속에서 나온 개구리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가. 파니는 한동안 휘몰아친 태풍을 잘 견디고 우뚝 선 한 그루 나무 같다. 앞으로 맞게 될 수많은 날에, 아름답고 강건한 줄기를 뻗고 푸르른 잎을 별처럼 매달게 될, 한 그루의 멋진 나무로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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