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조금만 더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1
존 레이놀즈 가디너 글, 마샤 슈얼 그림, 김경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감동을 받게 되는 경우, 그 감동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삶의 방향을 돌려놓을 수도 있는 묘약이 된다. 풍족한 환경, 무덤덤한 관계 속에서 아쉬움도 고마움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그저 살고있는 우리네 삶에서 짧지만 굵직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 우리는 반짝하는 행복의 햇살을 만난다. 그것은 한동안 우리를 즐겁게 하고 때론 흔들리게 한다.

아이들!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은 어느 순간일까? 이런 류의 동화를 읽고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그래도 역시 아이들은 빛을 속에 지니고 있다. 아이들의 빛을 차단하고 있는 막이 이런 동화를 읽음으로써 걷히고 가늘게 비칠 때, 참 맑은 얼굴을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얼음거인의 과묵한 양보가 가장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백인과는 한마디 말도 섞지 않으려는 얼음거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 누구도 거역하지 못할 정도의 단호한 진실과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삶 자체를 유린한 백인들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을 일순간 가시게 한 것은, 윌리라는 열 살 백인 소년의 용기와 자립심, 무엇보다, 할아버지를 살리고 감자농장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집념이었다.

이런 덕목은 어쩌면 인디언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자기반성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것을 무조건 빼앗은 자들의 후손에 대한 크나큰 배려와 양보는 결국 인간의 가슴 저 바닥에 깔려있는 진실성에 대한 감복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낸 소년 윌리는 단연 돋보인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넓고 깊다.

이런 면에서 <조금만, 조금만 더>는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줄 수 있는 선이 굵은 이야기이다. 간결한 구조 속에 행간의 침묵들이 생각의 여지를 충분히 주며 이야기의 속도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흑백의 크로키 같은 삽화 또한 이야기의 긴장감을 잘 전해주고 있다. 끝 장면은 마치 한편의 영화가 끝나듯 아쉬움을 주며 진한 여운을 준다.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다 심장이 터져버린 개, 번개를 끌고 결승점까지의 3미터를 걸어가는 윌리의 머리 위로 자막이 내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