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 Dear 그림책
숀 탠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사계절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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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정엄마께서 작은 아이에게 준 누런 봉투에는 내가 학창시절 모아 두었던 예쁜 엽서들과 코팅하여 모아둔 아기자기한 책갈피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을 보석과도 같이 귀하게 애지중지 모으며 뿌듯해 했던 기억이 이제는 안개 속마냥 아련하다. 물질의 풍요가 나에게 준 것과 나에게서 앗아간 것이 되살아나며 나의 일손을 잠시 멈추게 하였다. 다시, 내 아이가 그것들을 못 버리게 하며 소중한 보물 다루듯 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바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 중 하나가 아닌가 씁쓸하였다.

아이들 심리의 어두운 측면을 잘 비춰 준 <빨간 나무>의 '희망'이 준 신선한 충격에서 벗어나기 얼마 전 <잃어버린 것>을 만났다. '너무 바쁜 까닭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아주 작은 글씨로 책표지에 씌어 있는 것을 보면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진부한 소재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며 낯설다. 책표지에는 무채색의 어느 규격화된 미래 도시의 거리에 기이한 모양의 물체, 바로 '그것'이 있어야할 곳이 아닌 곳에 있다. '돌아갈 수 없다'는 표지판을 독자로 하여금 그냥 놓쳐버릴 수 없는 곳에 세워두었다. 앞만 보고 달려야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속표지에는, 내가 모았던 엽서나 책갈피들처럼, 하찮은 그러나 특별한 병뚜껑들이 줄을 서 있다. 그날도 주인공은 바닷가에서 병뚜껑을 수집하다 버려진 그것을 발견하고 주워서 온다. 작가는 잃어버린 것을 크게 두 가지의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의도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경험과 인식의 폭으로 각자의 잃어버린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의미의 잃어버린 것으로는 동심을 떠올릴 수 있다.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는 어른이라는 존재는 순수하고 소박한 기쁨의 가치를 외면하는 존재이다.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건져올리는 진정한 즐거움을, '그것'은 먹이로 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그것'에게 주는 먹이는, 트리가 그려져 있는 상자에서 꺼내는 별, 공모양 장난감, 병뚜껑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다.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런 것들은 사물에의 진심어린 애정과 호기심을 반영하는 일련의 상징이다. 주인공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버려진'그것'을 발견하는 기회가 줄어든다. '보고도 그냥 지나쳤거나 이젠 다른 일들로 너무 바쁜 탓'일게다.

사회적인 의미의 잃어버린 것으로, 기계문명 혹은 디지털 시대가 빼앗아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버려진 '그것'은 기계화된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듯, 작은 슬픔의 소리를 내고 있다. 빠르고 정확한 기계 대신 더디지만 느긋하게 손이 하는 즐거움을, '그것'은 그리워하고 있다. 워드프로세서에게 밀려난 수동타지기를 비롯하여, 벽시계, 연필, 노젓는 배, 책, 아코디언 그리고 컴퓨터 게임에 밀려난 비누방울 불기와 비석치기 놀이 같은 것들이 '그것'을 충분히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표정도 옷도 건물도 온통 무채색을 하고 있는 이 거리에서 '버려진 것'은 썩 어울리지 않으며, '왠지 이상하고, 슬프고, 버림받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의 양동이와 막대걸레는 기계가 앗아간, 손이 하는 소박한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빨간 나무>에서 처럼 <잃어버린 것>에서도 작가는 역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려진 것'이 아직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애써 찾아야하지만 '버려진 것'이 행복해 할 수 있는 장소는 분명 있었다. 그런 데가 있으리라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곳에 말이다. 그곳을 찾아 빨간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우리들의 자유이며 취향이다. 한눈 팔지 않고 빠르게 달리며 사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 등잔밑이 어두운 꼴은 되지 말자. 공기놀이 같이 하자고 하는 큰아이에게 바쁘다며 핑계를 댄 것이 미안해진다. 작은아이에게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나란히 앉아 함께 읽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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