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라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어린 시절 어린이책 이야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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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사라진 나라이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나라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나라는 새록새록 기억 저 편에서 떠오르는 뜨거운 해와 같다. 그 강렬한 체험, 체험의 강렬함. 그것들이 어른이 되어서의 삶을 규정 짓는 측면이 많다.어린 시절 겪게 되는 제각각의 체험을 강렬한 인상으로 건져올릴 수 있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복한 생의 체험이 아닐까? 아이들의 첫번째 세상으로서의 부모의 역할이 견고하다면 말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따뜻하고 유머 가득한 인간미가 녹아있는 어린이 책들을 읽을 때마다 '유쾌하고 즐겁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성있고 당당한 주인공과 어딘가 부족한 듯한 그이에게 한껏 힘을 실어주는 작가의 글쓰기가 늘 마음을 푸근하게 하곤 한다. 고령에도 변함없이 어린이다운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글을 쓰는 작가의 글쓰기 샘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나, 늘 경이로웠다.

'린드그렌의 어린 시절 어린이책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그 해답을 명료하게 들려준다. 초반에 장황하게 늘어놓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 두 사람간의 진실되고 성스러운 사랑의 힘이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을 강조 또 강조하는 것이다. 사무엘과 한나, 그리고 4남매가 이루는 가정은 따뜻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서로에게 충실한 것이었다.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과 자유로움은, 아스트리드가 부모님과 가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책임감을 전제로 하는 자유로움과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여 충실히 해낼 수 있는 결단과 자신감은, 사랑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이고 따스한 시선 못지않게 가치있다.

어린이 책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아스트리드는 먼저 언어의 사용을 신중히 할 것을 말한다. 내용과 언어의 일치. 다시 말해 책을 읽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의 사용을 말한다. 쉽고 평이하게 글을 쓴다는 게 오히려 어려울 때가 많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삶과 죽음, 사랑, 가장 인간적인 것을 모든 아이가 이해할 있을 정도로 소박한 단어들로 이야기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알지는 못해도 '말에 대한 즐거움'을 일깨우는 낱말들을 제시함도 중요하다고 한다.

아스트리드는 자신의 안에 있는 아이를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거리낌 없이 진정 즐거운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하며 글을 쓰라고 한다. 내 안에 아이를 키울 일이다.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뭔가를 뒤지려고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고,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며 생명을 사랑하는 아이를 말이다. 내 안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틀에 박혀 쫓기듯 살아가며 기뻐해야할 일에도 무덤덤한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라스무스와 방랑자>처럼, <삐삐 롱스타킹>처럼, 아이다운 활달함과 자유로움을 키울 일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자가 좋아하는 말은 '모험'일 것이다. 모험, 그 중에서도 가장 무한한 모험은 '독서'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모험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가장 무한하며 값진 모험의 세계인 책읽기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지금이 아니면 늦다고, 지금 맘껏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놓쳐버린다고 말한다. 그 모든 상상력은 어린 시절 부엌에서 듣고 읽었던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그러고도 아직 목말라하는 '내 안의 아이'를 위하여 아직도 어린이들을 위한 글을 쓴다고 말한 아스트리드가 '저 편의 세상'으로 간 지 1년이 되었다. 어린이 책을 읽거나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쯤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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