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나라 비룡소의 그림동화 42
존 버닝햄 글 그림, 고승희 옮김 / 비룡소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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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볼 때마다 나는 아이들의 나라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그가 그리는 아이들의 나라는 항상 상상력으로 충만한 자유로움을 나에게 선사하며 즐거움을 준다. 현실에서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틀 안에 가두고 억압하는 역할을 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의 사람이다. 하지만 좋은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보고 읽으면서 난 어느새 아이의 나라에 조금은 접근해 있는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 아이에게 좀더 다가가기 위해서 그림책은 더 없이 좋은 길을 열어놓고 있다.

<구름 나라>는 표지에서부터 실제 구름 사진이 눈길을 끈다. 그 위로 세 아이가 각자 다른 동작을 하고 있다.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면 여러가지 종류의 구름이 수 놓아져 있는 하늘 사진과 작가의 짙은 수채화 붓자국이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얀 종이 위에 가는 스케치로만 그려져있는 부분은 주인공 앨버트의 의식이다. 그 아이가 느끼는 그대로의 그림이다. 아이들의 그림은 여백이 많고 서툰 것 같이 보이지만, 보이는 그대로, 생각하는 그대로, 꾸밈이 없고 돌아가는 법이 없다. 가는 선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그림에서 아이의 순수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앨버트가 발을 헛디뎌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작가는 가는 세로줄 절벽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있는 조그만 토끼 한 마리를 그려 놓았다.

앨버트가 절벽에서 떨어지자, 엄마 아빠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대개 운이 좋다.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잘 해나간다. 앨버트는 구름 나라 아이들에 의해 구조되어, 다음 날부터 시시각각 다른 놀이로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구름 색깔이 점점 어두워지며 천둥 번개가 치려고 하자 '우리 실컷 떠들면서 시끄럽게 놀아 보자!'라고 하며 리듬악기를 두드리고 흔들며 노래부르고 춤춘다. 아이들의 입은 함지박만하다. 앨버트만 빼고 구름 나라 아이들 모두 헐렁한 잠옷을 입고 있다. 규율도 구속도 없어보인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모두 발가벗고 바다로 뛰어든다. 거칠고 굵은 붓자국이 아이들의 역동적인 힘을 잘 표현해 준다. 여기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고조된다.

비가 그치자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고 잠자기 전까지 모두 그림을 그린다. 다음 날 바람이 세게 불자, 아이들은 작은 구름 하나씩을 타고 달리기 시합을 한다. 혼자 제일 뒤에 처져있다는 걸 알게 된 앨버트는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 순간 커다란 비행기가 지나가는 바람에 앨버트는 떨어질 뻔 했지만, 비행운을 따라 아이들에게로 무사히 간다. 마치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집에 가고 싶다.' 앨버트는 구름나라에서 자기가 살던 집으로 다시 보내 달라고 한 최초의 사람이다. 구름 나라 여왕님은 앨버트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려고 바람과 몇날몇일을 의논한다. 여왕님과 달사람은 아이들의 편에서 아이들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하늘에 달이 둥그렇게 떠오르고 구름 나라 아이들과 앨버트, 달사람과 여왕님은 마지막 파티를 한다. 그 다음 앨버트가 기억하는 것은 자기 방의 침대에 자기가 누워 있었다는 것과 엄마랑 아빠가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꿈을 자주 꾼다. 앨버트는 한바탕 신나는 꿈을 꾸고 눈을 뜬 건지도 모른다. 꿈은 늘 현실과 맞닿아 있고, 눈을 뜨면 언제든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래서 무서운 꿈이나 힘든 모험의 꿈도, 눈을 뜨면 안도할 수 있는 현실이 있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그 현실에는 여왕님과 달사람 같은 엄마와 아빠가 있다. 앨버트는 내면에 자리하는 불안, 욕구불만, 외로움 같은 것들을 이제 이길 수 있다. 엄마 아빠가 양 옆에서 지켜주고, 가끔씩은 구름 나라에서 놀았던 것을 떠올리며. 하지만 구름나라로 들어가는 그 이상한 주문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유년의 기억으로 가는 주문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치부되어버릴지라도, 가끔씩은 아이들과 함께'뜬구름'을 잡고 아이들의 즐거운 나라로 가는 작은 행복을 맛보심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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