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 완전판 문학사상 세계문학
안네 프랑크 지음, 홍경호 옮김 / 문학사상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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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때 읽었던 기억을 간간이 건져내며, 완역판 <안네의 일기>을 읽었다. 종전의 것은 원래 안네가 쓴 것의 75% 정도였다니, 안네의 일부만 보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안네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갖게 되는 이성친구와 성적인 고민 그리고 은신처에서 함께 살던 어른들에 대한 신랄한 어조의 글이 그대로 들어있다.

안네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투명하다. 자신을 이중 인격자라고 하며, 당당하게 그러나 겸손하게, 자신을 윤색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맑은 영혼에서 비롯된다. 안네의 맑은 영혼은 하고 싶은 것을 자신있게 소망하고, 현실을 견디며, 끊임없이 지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한다. 안네는 글쓰기를 죽을 때까지 즐거워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답답한 내면을 숨김없이 토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키티에게 쓰는 편지형식으로 일기를 쓴 것도, '나'의 말에 진정 귀기울여 주는 대상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표현하고 싶어한다, 글로든 말로든.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다르고 습관이 다는 사람들 간에 흔히 있는 일이다. 글은 그렇지 않다. 안네가 글로 표현한 것들에는 어쩔 수 없는 사랑과 연민이 느껴진다. 엄마와의 어긋나는 관계에서도 십대 특유의 불거진 자아가 발견되지만, 그것도 혈육 간의 끈끈함 앞에서는 우선일 리 없다. 안네가 타인을 바라보는 눈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만큼이나 준엄하고 건전한 것이다. '건전함'은, 여전히 불건전한 세상에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안네의 꿈은 구체적이다. 저널리스트, 작가! 안네가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하려는 것도 그렇다. 역사공부에 대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하여... 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힘찬 미래의식에서 나올 수 있는 지적 욕구이다. 안네의 꿈을 알기에, 안네의 미래를 알기에, 구절구절 가슴 저린 대목이 많았다.

은신처에서의 2년 동안 안네는 몸과 마음이 성숙해지며 날마다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러한 안네의 육체와 정신을 있는 그대로 감싸줄 속옷 한 장도, 친구 한 명도 없는 처지에서 3살 연상의 페터는 더할 수 없는 벗이 된다.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성장의 길모퉁이에서 만난 동반자임에 틀림없다. 진지하게 조잘대는 야무진 얼굴이, 흑백사진과 함께, 연상된다.

안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무엇보다도 맑다. 그 통찰력 또한 흉내내기 쉽지 않다. 극한 상황에서 그런 것은 더 빛을 발하는 지도 모른다. '두렵거나 슬프거나 불안할 때는 밖으로 나가라고!' 자연이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이름이라는 것을 그 나이에 알아버렸다니. 두꺼운 커튼을 내리고 저녁 8시 이후에는 숨소리, 기침소리도 나지 않게 살았던 안네. 썩은 감자와 양배추로 빈속을 채운 무수한 날들도 안네의 삶을 구차한 것으로 만들지 못 했다. 정신적으로 갇혀 살고 있는 나에 비하여 안네는 진정한 자유를 구가한 평화주의자였다. 유대인에 대한 자긍심, 전쟁(싸움)에 대한 보편타당한 비판, 지구 곳곳의 부와 가난에 대한 통찰... 자신을 참되게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생각들이 아닐까!

안네가 내 가슴 속에서 부활하였다. 아마도 영원히 자리하고 있을 십대의 친구로, 온전히 다시 태어났다. '나'를 찾아, 밤잠 못 이루고 일기장에 글을 쓰곤 했던 그 나이 때의 내가 떠오른다. 흑백 사진 속에서,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쁜 안네가 연필로 무엇인가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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