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네가 보고 싶어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1
조민희 지음, 윤문영 그림 / 계수나무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표지에 그려져있는 어여쁜 눈동자의 두 소녀. 곱게 다문 입술에 볼이 통통한 얼굴, 맑은 눈망울이 왠지 조금은 외로워 보인다. 섬세한 스케치에 깨끗한 수채화 붓자국이 꽤나 인상적인 그림이다. 내용을 읽다가 삽화를 보는 재미 또한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나는 지금 누구를 보고 싶은 걸까? 누군가 그리운 얼굴 하나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나만의 비밀스런 행복감이 아닐까? <나는 지금 네가 보고 싶어>는 11살 두 소녀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이야기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책장마다 밑줄을 긋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아무하고도 특별한 사이가 되지 못하는 은아는 이미 왕따를 당하고 있는 위니와 단짝이 된다. 은아와 위니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되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친구 사이라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은아는 자신이 위니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음을, 위니의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거라면 버릴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말을 흔쾌히 들어 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후에야 깨닫게 된다. 언제든 내가 필요치 않을 때면 달아나 버릴 수 있는 정도로 친구를 대하는 버릇. 나의 소중한 것 어느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고 친구를 대하려는 이기심. 은아는 결국 '자기한테 소중한 걸 내놓은 사람들만 어른이 되는 거야'라고 성장의 비밀을 터득한다.

인생은 뭐든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애초에 가졌든 꿈과 이상이 내가 준비하는 과정에 맞춰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 2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반드시 차선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었다. 이제는 어떤 결과를 기다려야 할 일이 있으면 조바심하지 않는다. 그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또 하나의 길이 있으므로 안달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나를 선선히 포기하고 내놓으면 다른 것으로 보상되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에 연연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에서 가슴 벅찬 행복을 느끼는 것이 삶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릴 적 꿈과 순수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되어 봄직한, 인생의 아름다운 목표가 아닐까? 어른은 누구나 되는 것이지만, 진짜 멋진 어른이 되어 보려고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하는 연습은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도 잃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생각만 했었다. 특별히 소중한 한 사람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해 본 적도 없었다. 내년이면 11살이 될 큰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이가 겪어나가야 할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엄마처럼 많이 속앓이를 하고 눈물도 흘리면서, '나'를 버리는 연습을 잘 해나갈 것이다. 때로는 대신 겪어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럽기도 하겠지. 그래도 든든한 눈으로 지켜 보아만 줄 것을 다짐해 본다. 슬며시 이 책을 건네주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