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헤르만 헤세의 낭만적인 시와 산문이 아름다운 꽃그림과 함께 단아한 책이 되었다. 수선화, 목련, 백일홍, 튤립, 이이리스... 펜 소묘에 수채화로 채색된 꽃그림이 주는 여운은 길고도 향기로운 것이었다. 헤세는 식물과 더불어 사는 시간들을 통해 삶을 관조하고 통찰하며 자연과는 어긋나게 가고 있는 세상을 안타까와했다.

그의 사상은 다분히 동양적이며 신비적이다. '......신이 네 안에서 말씀하시도록 하라......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든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헤세는 꽃도 시들듯이 그렇게 우리도 '구원의 죽음'만을, '재생의 죽음'만을 죽는다고 한다.

헤세는 '꽃의 향기를 통해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고, '예전에 잃어버린 아득한 소리에 대해 명상하고 모색하고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 뒤쪽에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있을'거라고. 아이리스 꽃봉오리 속... 그 속은 '세상의 모든 형상들 뒤에 깃들여 있는 신비로운 본질 속'이라고. 예감해 왔던 내면의 세계에 아름다움을 부여하기 위해 통과해야할 몇몇 사람들만의 상징의 문이라고.

헤세는 지상의 어느 예술작품도 꽃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역설한다. '예술은 우리와 세계의 심장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민감한 막'이란다. 그러나 '세계의 심장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것마저도 뚫지 않으면 안 되는 것'라며. 우리가 돌아가야 하며 추구해야 하는 고향 혹은 세계의 심장은 꽃으로 상징된다. 그의 단편 '꿈의 집'에서 '노인은 약간 원시가 된 눈으로 웃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주름진 얼굴, 예리하게 빛나면서도 따스한 눈빛, 마른 듯 강단있어 보이는 긴 팔로 꽃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낙엽을 태우는 일들을 경건한 의식을 행하듯 하고 있는 모습을 흑백사진을 통해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사진은 선명한 색채의 꽃그림들과 대비를 이룬다. <정원 일의 즐거움>은 두고두고, 나의 정신이 무언가로 혼탁할 때,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단순해지려할 때, 아무 장에서나 펼쳐들고 읊조리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