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학사상 세계문학 12
J.D.샐린저 지음, 윤용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3년 7월
평점 :
절판


전형적인 악한소설(Picaresque Novel)의 특징들을 고루 가지고 있는 이 현대소설은 주인공 홀든의 어투만큼이나 비뚤어져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대개의 악한소설의 주인공처럼, 홀든은 아주 태평스럽게, 사소하다할 수 있는 잘못을 멈추지 않고 저지른다. 하지만 용케 범죄로 일컬어질 만한 행동의 선은 넘지 않는다.

기성세대에 대한 10대의 신랄한 조롱이 주를 이루는 내용인데, 정작 주인공도 어떤 성품의 고양됨을 성취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성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됨없이, 빈정대고 냉소적인 말투에 잘 드러난다. 그래도 소위 '문제의 10대'인 홀든 - 사회적 규범으로는 - 이 밉지 않고, 그 건들거리는 어깨를 한번쯤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의 말과 행동이 뒤틀려있고 거칠수록 그 마음에 자리하는 소망은 더 간절하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그런 소망의 본질을, 홀든은 '탈선'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깊이 인식하게 된다.

홀든의, 혹은 작가의 탈선 충동은, 낙제한 '구두표현법' 과목에 대한 변에 잘 나타난다. - '쉴 새 없이 통일시켜라, 간결하게 해라, 그런 말만 한다니까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홀든이 '탈선'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목이 있다. 역시 앤톨리니 선생님과의 '구두표현법'에 관한 대화이다. - '어떤 학생이 조금이라도 논지에서 벗어나면, 나머지 학생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탈선!'하고 외치게 되어 있어요. 도무지 못마땅했죠. 그래서 'F'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저는 남이 '탈선'이라고 소리지르는 걸 들을 때 조금도 싫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쪽이 오히려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고나서 덧붙이는 말은 그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까지 보여준다. - '요점에서 빗나가지 않기를 바라죠. 하지만 너무 요점에만 얽매이는 건 싫습니다.' '처음과는 다른 이야기에 빠져(그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꼈기 때문) 흥분하여 지껄이는 놈을 향해 '탈선!'하고 외치는 것'을 홀든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작가가 이 소설을 풀어가는 방식과도 다르지 않다.

홀든은 48시간의 일탈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순백에 대한 열망을 발견하게 된다. 탈선의 체험을 통해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진정 나 자신이 추구해야 하며,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나'의 소리에 귀를 닫고 선 밖을 나가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삶이 꼭 보람된 것일까? 삶이 한번의 여행길이라면 정해진 길만 따라 갈 수 있을까?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마음가는 대로 여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한다면, 누구에게도 탈선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다. 기나긴 여로에서 활력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탈선! 몇 번이 될 지, 언제가 될 지, '새로 태어남'의 기회가 될 수 있는 탈선은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홀든은 예정이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탈선을 감행하고 세상의 더러움을 목격한 후,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순결함으로 대변되는 여동생 피비임을 깨닫는다. 비에 온통 젖음으로써, 그는 재생한다. 비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세례 의식을 홀로 치르며, 이제는 돌아가고픈 곳을 진실로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피비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는 홀든이 이제 다시는 탈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언제든 마음이 내키면 멋지게 '탈선'을 거듭할 것이다. 또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말이다.하지만, 훌륭한 결과을 의도하고 저지르는 탈선은 아니다. 미흡하고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 허물 많은 우리 인간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홀든과 비로 온몸이 젖어들도록 앉아있는 홀든의 모습은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자신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쏟아 붓고 난 후, 아직도 투덜대고 있지만, 조금은 누그러진 듯한 홀든의 목소리가 정감있다.
'누구에게도 아무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어. 얘기를 하고 나면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 내 주변에 없다는 게 더욱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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