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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은 알지요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김향이 글, 권문희 그림 / 비룡소 / 1994년 10월
평점 :
절판
거의 20여년 전의 일이다. 어느날 매일 쓰던 일기를 달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들어주는 대상으로 달님을 선택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유치했었던 것 같지만, 그 때는 나름의 답답한 심정을 그렇게 풀고 싶었던 모양이다.
<달님은 알지요>의 송화는 아무도 몰라주는 자신의 마음을 달님에게 올려보낸다. '달님이 거울이라면 좋겠어요....... 영분이랑 영분이 엄마가 어쩌고 있는지 비춰 보게요.......아빠 얼굴도 비춰 봤음 좋겠어요...... 달님은 알지요? 내 맘 알지요?' 서울로 이사간 친구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달님에게 말을 거는 송화의 마음이 낮달만큼 맑다.
영분이도 아빠도 송화에게는 낮달과도 같은 존재다. 낮에는 달을 잘 볼 수는 없듯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하늘에 떠있는 달을 닮았다. 동그란 얼굴로 고향처럼 푸근히 '나'를 통째로 덮어줄 것 같은 달님이다.
<달님은 알지요>는 도시의 아이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사는 시골의 풀내음, 벌레소리,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정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그리고 있다. 가족의 의미, 혈육의 의미가 험난한 시대를 거쳐 진하게 전해져 온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어여쁜 우리말을 풍부하게 골라내어 잘 살려 쓴 문장들이 참 곱다.
'비둘기빛 산그리매가 들녘을 가만가만 덮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가만히 그림이 그려지는 구절들이 참 많다.
그런데, 12살의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그린 작가가 좀더 이 여자아이에게 진취적인 생각을 심어주었더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6학년 영기 오빠가 생물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다부진 모습을 그저 부러워만 하지말고 말이다. 여자아이들이 흔히, 무슨 정답인양, 가지는 선생님이나 간호사의 꿈이 다는 아닐 것인데. 그것도 남다른 의지없이 상황따라 일시적으로 가지는 꿈으로 그리고 있다. 영분이가 죽은 아버지의 상주로 나설 때, 어느 노인네의 말도 그슬린다. 여자가 상주를 해서야...... 라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작가도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이런 글귀를 접하는 우리의 딸들이 은연중 지니게 될 생각들은 어쩌란 말인가?
송화의 할머니가 한마디씩 던지는 여자들의 금기 행동같은 것도 마음에 걸린다. '여자는 아침잠이 길면 흉된다.'라고. 부지런함의 덕목이 비단 여자한테만 해당되는 덕목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옳은 말도 '여자는...' 내지는 '여자가...'로 시작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의 딸들이 남녀 편가르기를 무의식적으로 몸에 받아들여서 위축되는 것은, 양성평등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아이들의 깨끗한 의식을 흐리는 구정물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우이기를 바라면서, 마지막 장면의 할머니가 하시는 통일굿 한판이 무척이나 신명났다. 송화 아버지의 북소리와 할머니의 춤이 한데 어우러져 '응어리진 한을 풀어낸'다. '......정한 마음으로 원수가 있거든 내리사랑하고 사랑해서 옳은 길 바른 길로 통일되게 하소서......' 지은이의 말처럼 '사랑이 사랑을 낳는법' 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고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