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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너머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80
찰스 키핑 글.그림, 박정선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창 너머' 무엇이 있는 걸까? <창 너머>의 표지는 무슨 괴기영화의 포스터같다. 푸르등등한 얼굴에 잿빛 입술과 잿빛 눈을 한 사람. 눈동자는 무엇엔가 놀란 듯 불안하다. 잔뜩 호기심이 나기 사작한다.
제이콥이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세상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바라볼 수 있는 창 밖의 풍경이 모두다. 예배당이 보이고, 그 곳에 사는 '쭈그렁탱이' 할머니와 비쩍 마른 때묻은 개 한마리. 그 지붕 너머로 보이는 양조장과 양조장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구간. 알프네 과자 가게. 거리를 청소하는 위레트 씨. 사람들한테 침을 뱉기 때문에 제이콥이 싫어하는 조지는 과자가게로 들어간다. 양조장에서 뛰쳐나온 말들이 무섭게 질주하는 바람에 놀란 비둘기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마부가 쫓아가 말들을 잡았지만, 쭈그렁탱이는 온몸이 축 쳐진 개를 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개는 달리는 말에 치어 죽었을 것이다.
뭉크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이 달아오르는 기분으로 그림을 보았다. 가슴이 쿵쿵 방망이질 한다. 달리는 사람들은 정말 눈 앞에서 달리는 것 처럼 동작이 살아있다. 팔다리에서 속도감과 운동감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공허하게 뻥 뚫려있는 눈과 입을 하고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말들을 좇는 사람들. 말이 나오는 장면은 빨간색이다. 양조장에서 뛰쳐나와 무섭게 질주하는 시뻘건 말들. 나를 엄습하여 덮칠 것같은 무서운 기세다. 불구의 제이콥, 힘없는 개가 당해낼 수 없는 세상의 폭력일까? 무서운 편견일까?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도 없고 호소할 수도 없는, 힘없는 자 들에 대한 조금 강한 자들의 휘두름일까? 그 발로 짓밟으면, 짓밟힌 자는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그저 고개숙이며 뒤돌아 가는 수밖에 없는......
'우리 개가 말하고 싸운 걸 거야, 그래, 분명히 그랬을 거야.' 제이콥의 무의식에 자리하는 이런 생각은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그린 그림에 잘 드러난다. 쭈그렁탱이는 입이 귀에 걸리게 웃고 서서, 고개를 힘차게 들고 건강해보이는 몸의 개를 안고 있다. 제이콥은 말하고 싸워 이긴 씩씩한 개를 그린다. 그런 자신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한 바람이자 의지로 보인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보다가 이 책처럼 뭐라 형용할 수 없이 섬뜩한 인상이 박히는 것은 처음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하다. 내가 느낀 것이 작가의 의도한 바에 근접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기회에 찰스 키핑의 다른 작품들도 함께 이해해 보는 시도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