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기분 좋은 날 보리 어린이 10
한국글쓰기연구회 지음 / 보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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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 아이들이 쓴 글 모음을 전에 읽었던 나는 3,4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도 읽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아이의 일기를 살짝 들여다 보는 마음이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솔솔 풍기는 아이들의 향기가 나를 울리고 웃기고 한숨 짓게 하였다.

세상을 더 많이 살았다고 큰소리치면서 정작 중요한 사실은 알지 못하고 아니 느끼지도 못하고 사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학교를 가고 여러군데의 학원을 가고 친구들과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아니면 혼자서 심심하여 이리저리 뒹굴면서, 아이들은 거의 직감으로 알아채고 느끼고 깨닫는다. 무엇이 바른가, 무엇이 정인가, 무엇이 사랑인가 그리고 무엇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를.

아이들은 거의 본능에 가깝게 생명을 아낄 줄 안다. 올챙이가 힘든 과정을 거쳐 개구리가 되는 것을 알게되고, 새끼 염소에게 자신의 우유를 빨대를 꽂아 먹인다. 땅을 촉촉히 적시는 봄비를 보며 이내 나올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은 또 얼마나 예쁜가?

아버지의 죽음, 친구의 죽음 앞에서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내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그래도 당해낼 수 있는 일이라며 견디겠다고 하는 아이. 병으로 활짝 피어나지도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친구의 죽음을 보며, 그동안 놀린 것을 미안해하고 그 친구가 자기에게 준 편지를 절대 버리지 않을게 라며 다짐하는 아이. 기쁜 감정만큼이나 슬픈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끗한 영혼을, 편지와 함께 절대 버리지 않기를...... 슬픔을 겪은 아이는 마음의 키가 쑥 자라나있을 것이다.

자기보다 모자라고 약한 친구를 돌봐주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면 왕따라는 말이 무색하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는 아이들의 눈은 따스하고 그 품은 넉넉하다. 나이든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편견이 이해가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이 다 이렇다면 왕따 문제로 병드는 아이들도 없을텐데. 모두 어른들의 잘못된 태도를 보고 무의식으로나마 몸으로 익히는 건 아닐까? 말 한마디 몸놀림 하나에도 얼마나 정성을 쏟아 우리의 아이들을 대해야 할까 하는 진지한 숙제를 안은 느낌이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각을 보면 마냥 어리다고 눈과 귀와 입을 열어줄 생각은 잘 해보지 않는 어른들이 오히려 어리석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다가오므로 그만큼 직설적이고, 바라보는 눈 또한 투명하다. 애당초 선글라스같은 건 없다. 적당히 눈에 보기 좋은 색으로 덧칠하려고 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뱉어내어 거침없다.

아이들의 투명한 눈은 자신을 바라볼 때도 다르지않다. 거짓말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진실을 말할 때 비로소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아이들의 생각과 말은 행동과 일치한다.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유세 행태도, 음료수를 학교에 가지고 오지말라고 하면서 선생님은 왜 음료수를 가지고 오실까, 물음표를 찍고 싶은 것이 많다.

쉽고 깨끗한 우리말로 아이들의 삶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한 글들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아이가 되어 키득거리기도 하고 눈물 흘리기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했다. 보듬고 마구 뽀뽀를 해 주고 싶은 이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자신만의 향기를 잃지말고, 각기 다른 얼굴을 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커갈 수 있기를......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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