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변에서 온 이모 ㅣ 웅진책마을 14
소중애 지음 / 웅진주니어 / 1994년 7월
평점 :
절판
어제 모방송국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로의 귀화를 희망하는 외국인들과 외국 근로자들의 생활을 비추어주는 내용이 채널을 고정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배타적인 시선과 불합리한 대우를 일삼고있는 노동현장등은 차치하고서도, 한 외국인 근로자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한국인은 친절해요.. 힘있는 사람에겐 잘해주고 힘없는 사람에겐 잘 안해줘요.' 우리랑 다르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다루는 습성은 언제 어디서부터 생겨나 몸에 베었을까? 힘없는 자 위에 군림하거나 그들을 속이고 이용하는 악행은 내 민족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교만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 아이 영표는 초등 5학년이다. 자신의 집 식당 종업원으로 온 연변 여자는 자신이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계속 쥐고 있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재다. '연변이모'의 촌스러운 외모, 우스운 말씨부터 시작해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수룩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반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야기거리다. '야만인을 문화인으로' 바꾸어 놓고 말겠다고 야심찬(?) 결심도 공공연히 내뱉는다.
남을 이해할 줄 모르고 당돌한, 하지만 자신을 결코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자신만만한 영표가 무공해 연변이모와 지내며 변해가는 모습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모난 구석이 많다고 생각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의 모습같기도 하다. 차가와 보이는 영표의 가슴 한 구석 따뜻한 줄기는 한 끄트머리를 잡아당기자 실타래 풀리듯 온전한 길이대로 펼쳐진다. 그동안은 남을 할퀴려고만 잔뜩 또아리 틀고 있었던 것처럼.
남동생을 학수고대하시는 나이든 고모와의 사이에 두었던 차가운 얼음조각도 깨버리고 이젠 '나도 동생 갖고 싶어졌단 말이예요'라며 너스레를 떨 줄도 안다.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을 나쁜 아저씨의 꾐에 빠져 다 잃어버리고 넋이 나가 있는 연변이모를 측은해하고, 맛을 기억해두기 위해 철학자같은 표정으로 군것질을 하던 이모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사람이 그렇게 나쁘다는 데 말이 안 나와요. 내 주위 사람들은 아무리 노동질을 하면서 살아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 경제골이 발달한 사람들이 더 나쁘다는 걸 알았어요. 참 바빠요(힘들어요). 여기서 살기가 너무 바빠요.' 연변이모의 울음섞인 말이다.
마침내, 아이들의 찧고 까부는 소리에 영표는 소리를 버럭 지른다. '누가 누굴 야만인이라고 하는 거니? 잘 산다고 다 문화인인 줄 아니? 아냐, 절대 아냐. 야만인은 우리가 야만인이야, 우리가 야만인이라고.' 작가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소외층을 대변하여 소리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