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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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세 번째 녹음도서 낭독용으로 고른 책이다. 도서관 녹음실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 중에서 대개는 내가 고르고 간혹 회원(시각장애우)의 신청도서가 있는 경우는 그걸 우선으로 한다. 이 책은 ‘제5회 한겨레 인터뷰 특강-배신’을 모아놓은 것이다.

 사회자 오지혜 씨뿐만 아니라 여섯 명의 인터뷰이에 마음이 쏠렸다. 그녀의 연극은 한 편도 보지 못했고 영화 ‘잘 살아보세’에서 줄줄이 딸만 낳는 며느리로 아들을 원하는 시어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또 가졌지만 낙태를 위해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70년대 초반 충청도 시골여자, 또 다른 영화 ‘안녕, 형아’에서 소아혈액암을 앓고 있는 아들을 오래도록 간호하며 소리 내지 않고 울기 위해 물속에 얼굴을 담그고 우는 방법을 다른 엄마(배종옥)에게 가르쳐주며 담담한 미소를 짓는 어미로 만났다. 68년 생 그녀는 이 인터뷰 특강의 사회자로서 재치와 지성과 활달함을 겸비하여 특강내용과 청중의 질문에 초점을 잡아주고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데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눈으로만 읽은 게 아니라 입으로 읽음으로써 마치 내가 인터뷰이 또는 인터뷰어, 청중이 되어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김용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진중권,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전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 서울대 법대교수 조국(작년 3월24일에서 4월8일까지 인터뷰 차례순). 책날개에 있는 저자 약력으로 읽은 간단한 프로필인데 이보다 훨씬 넓고 다양한 프리즘을 통과하는 매력적인 이들의 유익한 특강과 청중들의 질문에 구체적이며 현명한 해답을 내려주는 내용들을 다 읽고 나면 시원함을 부르는 감동과 함께 두 가지의 질문이 남는다. 배신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렇다면 배신이 지혜가 되는 전복의 쾌감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이다.

 배신이란 무엇인가,는 정재승이 꼭 생각해보라고 한 질문이기도 하다. 배신이라고 하면 악덕에 해당되는 낱말이지만 이것을 미덕으로 발휘한 이들 여섯 명의 공통적인 주장은 단적으로 보다 큰 집단, (사사로운 조직이 아닌)공공의 이익과 정의를 위해서는 과감히 배신을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대의를 위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뜻과는 전혀 다르다.

 책의 순서와는 달리 정혜신의 ‘배신의 정신분석’을 먼저 읽어볼 필요가 있다. 행동의 동기를 이해하기보다 현상부터 보는 대부분의 우리는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는 일은 많아도 내가 배신을 행했다고 느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데에서 ‘유사배신’이란 말이 탄생한다. 배신의 고갱이는 '헛된 믿음'이지만 ‘기본적인 신뢰감’(basic-trust)이 훼손당하면서 존재 자체가 거부당할 때 우리는 배신감을 느끼고 그것은 성장 후에도 정신병적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 사회 ‘배신감의 과잉상태’에 허덕이는 우리는 무엇이 진짜 배신인지 객관적인 분별력을 기르는 것이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길이다. 사랑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라는 것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올바른 의미는 아니지만)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 김용철은 작년 4월 특검에게 배신당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배신의 대가는 오직 양심의 자유’라고 하며 이런 공식을 남겼다. “영향력과 권력의 크기는 대중과 최고권력자와의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한다.” (p34)  특강 뒤에 이어지는 청중의 질문과 답변에서 다른 인터뷰이들의 것보다 가장 직선적이고 우직함과 솔직함이 돋보였다. 이 특강의 주제 '배신'이 나오게 된 배경과도 가장 직접적으로 닿아있기 때문이다. 


 배신자가 되지 않으려면 자주 배신해야 한다고 말하는 진중권은 대중을 끊임없이 배신하며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논객이되 입장을 바꾸지 않는 먹물이고 싶어 한다. 그가 경비행기 마니아인 줄은 처음 알았다. 니체가 이렇게 이야기했단다. “니체를 읽고 니체주의자가 되는 것은 니체주의가 아니다. 니체를 읽고 너 자신이 되어라.”(p149) 황우석 사태와 디워 사태 때의 이야기를 비롯해 그의 이야기는 명쾌하고 거침없이 달린다. 자기(올바른 논객)를 믿지 말라고, 언제 우리(대중)를 또 배신할지 모르니까.

 과학콘서트로 유명한 정재승은 배신은 동물의 본능이라며 배신의 다양한 유형을 설명한다.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에서부터 약속의 파기나 계약의 불이행, 감정적 부정(不貞), 얻은 만큼 돌려주지 않는 경우, 그리고 무임승차(free fide)까지. 이렇게 배신의 개념을 늘여놓고 보면 어느 누구도 배신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임승차는 그가 주로 연구하는 주제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TV시청료를 내지 않는 것에서부터 우리 모두가 공공재를 사용하기 위해 내고 있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부정을 저지른 삼성이야말로 배신의 한 유형인 무임승차를 한 셈이라고 한다. 김용철은 침묵의 카르텔을 깬 배신자가 되겠지만 이런 배신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있는 경우가 된다는 것이다. 내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보편적인) 집단에 대한 신뢰를 지키려는 노력은 인간 외에 그 어떤 동물 집단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p184) 그런점에서 올바른 배신은 가장 인간적인 행위로 보인다.

 정태인은 현 정권이 추진하는 경제의 배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데 귀에 쏙쏙 들어오는 식이다. 한미FTA가 다른 FTA와 다른 큰 특징은 네 가지 독소조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네거티브 리스트, 래칫(rachet)조항, 미래의 최혜국 정책, 투자자-국가제소권(ISD). 각각 간단히 요약하자면,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쓰는 것, 거꾸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 일본에 해 준만큼은 미국에 해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게 ISD(invertor-state dispute settlement)인데 정부의 정책이 기업의 이익을 ‘상당히’ 침해하면 쓸 수 있는 제도다. 미국기업이 행정소송을 했을 경우 어떻게 그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며 chilling effect를 든다. 우리 정부는 스스로 쫄아붙어서 알아서 제약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은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은사특권’(오지혜는 재미있게도 고추말리기 심리라고 했다)에 대한 기대로 ‘내가 이길 수 있다’라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의 믿음보다는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극복할 수 있다며 중립지대를 형성하여 어느 한 쪽의 패권을 견제하는 캐스팅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대학과 지식인들의 천박한 배신을 말하는 조국은 국민참여재판을 제안한 바 있다. 법은 무관심한 대중에 서비스하지 않는다고 하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늘어나는 폴리페서(polifessor)들의 윤리와 책임의식,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왜곡된 의미로 선전된 진정한 법치의 정신을 말하는 그는 지식인은 자신의 존재기반, 계급기반, 생활환경과 자신을 떨어뜨려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내부를 성찰하고 그 밖에 공공의 이익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직시하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민주, 인권, 평등, 분배, 복지, 관용 등의 진보적 가치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그 가치를 말하고 외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 영역에서 조그맣게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할 때 진보는 현실화 된다고 생각한다.”(p293)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이야기하며 인용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나톨 프랑스의 야유 섞인 말은 우리 사회 법률가들이 법의 정신을 배신하고 있는 데에 대한 일침이다. “법은 그 장엄한 평등 속에서,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부자에게도 다리 밑에서 자고 거리에서 구걸하고 빵을 훔치는 것을 금하고 있다.”(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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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31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고마워요, 혜경님!

프레이야 2009-02-02 04:47   좋아요 0 | URL
만족하실거에요. 빌려 읽어도 좋을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