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古隱) 사진 미술관, 개관 기념 구본창 사진展


 
 
 
 

불교 예술은 현재에도 숨 쉬며 살아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시대적 흐름에 맞는 도구로 담아내며 보여주고 또한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장이 부족하다. 고은문화재단은 특별한 전시관을 마련하여 이런 현실의 답답한 숨구멍을 튀우는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 영상미디어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사진을 통해 불교와 지역문화를 아우르는 선구자로 나선 것.

고은문화재단(이사장 김형수)은 고은사진미술관(관장 이재구)을 12월 1일 개관했다. 고은 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설립된 공익재단으로 이번에 개관한 미술관은 부산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앞으로 고은사진미술관은 국내외 유명사진작가들의 전시기획, 신인작가 발굴 및 지원, 사진 문화의 대중화와 사진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앞장 설 계획이다.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이재구 관장은 “부산은 국제영화제 및 불꽃 축제 등 다양한 행사들을 열고 있다”며 “지역의 문화 발전을 도모하며 국제적 행사를 아우르는 기획을 선보일 것이다”고 밝혔다.

개관 기념으로는 ‘구본창 사진전’을 기획했다. 구본창은 사진은 언뜻 보면 닳고 낡아서 힘없이 갈라져 버린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새것으로의 과거와 당당한 현재 그리고 소멸될 미래가 서로 소통함으로써 사진의 본질인 시간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는 백자(vessel), 비누(soap), 바다(ocean), 그리고 오브제(object)로 구성됐다. 사진전은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이다. (051)744-3924-5
하성미 기자 | hdb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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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구청 맞은편에 위치한 고은 사진 미술관이라고만 알고 찾아갔다.  젊은 사람들 몇몇에게 물어도 모르겠다고 하고 바람은 차고 우리는 길에서 어슬렁거리며 숙덕거리고 있었다. 거의 칠순이 가까워 보이는 아주머니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를 지나가다 듣고서 손짓까지 해가며 자세히 알려주셨다. 새로 생긴 전시관 말이지? 이러시면서. 가보면 좋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이번 목요일에 옆지기와 갔다. 현대적인 외관에 절제된 디자인의 내부 전시관이 마음에 들었다. 수수한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모던한 모습으로 살짝 들어앉아 있었다. 살청 님의 페이퍼가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2007년 12월1일에 개관하여 지금 첫 전시작품으로 구본창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애초에 1월 18일까지로 예정했으나 호응이 좋아 2월 16일까지로 연장한다고 한다.

일층에는 카페떼리아가 있고 그 내부에도 사진을 전시해두었다. 커피향이 진하게 퍼지는 코너공간을 살린 이곳에는 '바다'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주로 1995년정도의 작품들이었다. 통유리 안으로 내부가 맑게 들여다보이게 되어 있고 나뭇바닥의 느낌이 좋은 아담한 테라스가 밖으로 나와있었다. 전시관은 지하1층과 지상 2층으로 나뉘어있었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닳아져가는 비누와 숟가락, 장갑 같은 것들이 마치 회화처럼 순결한 사진틀 속에 들어앉아있었다. 그의 사진이 전시된 것은 처음 보는데, 미묘한 느낌을 주는 깊고 고요한 세계였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 그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듯 가만히 보고 있으면 쉼없이 뛰고 있는 조용한 맥이 느껴졌다.

시간앞에 우리는 평등하다,는 어느 사진심리학자의 문구가 마음을 끌었다. 우리가 너나없이 평등할 수 있는 건 시간이라는 거대한 비가시적인 존재앞에서 뿐이 아닐까. '시간'은 닳고 말라비틀어져 금이 간 비눗조각이거나 손잡이 부분이 닳아 반질거리는 숟가락 같은 것에 가시적으로 생존한다. 옆지기가 오래 매달리고 있는 주제와도 상통한다. 오래되고 낡아지고 떨어진 것들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옆지기 사진의 눈이 시간의 반추와 회기를 너머 시간의 재생에 대한 열망으로 내겐 읽힌다. 그러고 보면 비슷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음식을 우리는 날마다 이런저런 손맛을 느끼며 맛나게 먹듯이 예술작품이란 것도 창의력의 한계 안에서 고만고만한 것들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빚어내는 것이다. 해석의 문제이거나 의미짓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숟가락 사진을 보다 우리가 한살림을 차린 역사적인 날이 생각났다. 1989년 8월 한여름이었다. 그 때 나는 수저 열 벌을 준비했다. 그 중 몇 개는 지금도 버리지 않고 주방에서 쓰고 있다. 요새 산 것들보다 두껍고 무게감이 있다. 손이 닫는 부분의 금도금은 벗겨져 희끗희끗하다. 나는 그걸 버릴 수가 없어 몇 번의 이사에도 데리고 다녔고 지금도 요긴하게 쓰고 있는데, 얼마 전 옆지기가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예전에 신혼살림 장만하며 샀던 장농을 깨어버리자는 그의 말에 얼마나 섭섭하고 억울해서 발끈했던지, 생각해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버린다해도, 버리고 싶지 않은 몇 가지가 있게 마련이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자 달을 닮은 백자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달이 28일을 주기로 변해가는 모습을 백자로 표현한 것이 특이했다. 대상과 배경의 빛의 대조가 삶의 극명한 대조로 보였다. 빛과 그림자, 흑과 백, 그리고 그 경계에서 허물어지는 그 모든 것들... 차고 비우고 다시 차고 또 비우고.. 생성과 소멸의 무한함과 공허함.

2층에 그의 사진집들을 판매하는 데스크가 있었지만 좀 넘겨보고 사지는 않았다. 열화당의 25,000원짜리가 그나마 가장 저렴한 책이었다. 구본창 작가의 아버지가 영면하시기 전 헐떡거리는 숨을 들이쉬고 계실 때 그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일화로 유명한 그 사진이 책자에 있었다. 숨, 생명, 살아있음의 신호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종종 들려볼 수 있는 사진미술관이 가까이에 생긴 것, 반갑다. 전시 자체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이런 공간이 지역에 생긴 것이 기쁘다. 옆지기는 라이카 부산 전시를 개최하거나 개인 사진전을 먼훗날 갖게 된다면 이곳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나는 맞장구를 치며 문을 나왔다. 이건 창호의 견고하고 심플한 문이 찰카당 하며 닫혔다, 우리 뒤에서.

 

- 2008년 1월 16일 관람

051-744-3924(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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