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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의 인턴십 - 프랑스의 자유학기제를 다룬 도서 ㅣ 반올림 12
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 김주열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11월
평점 :
우리 청소년소설도 소재나 내용면에서 전보다 솔직하고 대담해졌다. <열네 살의 인턴십>은 프랑스 작가의 청소년소설이다. 우리 것보다 확실히 더 대범한 표현이 많다. 열네살의 주인공 루이는 우리나이로 중학교 3학년이다. 그네들은 졸업을 앞두고 일주일 간의 인턴십 기간을 갖는 걸 원칙으로 하나보다. 꽤 부러운 제도다. 현실적으로 여건이 갖춰진다면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이런 기간을 갖게 하면 참 좋겠다 싶다.
이 책은 루이라는 남학생의 성장기를 다룬다. 공부에는 취미도 능력도 별로 없고 내성적이고 남성미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한 매력을 풍기는 루이는 다정함과 세심함이 장점이다. 말수가 적은 루이는 그래서 나중에 “아빠 최고야.”라는 한 마디로 적대적이었던 아빠와 깊은 공감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말수가 적은 자의 말의 힘'이다. 루이는 인턴십을 앞두고 일자리를 골라야하고, 어렵지 않게 고른 자리는 미용실이다. 할머니의 제안이 있었지만 그것은 루이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할머니의 부추김이었던지도 모른다. 외과의사인 아빠의 반대에 부딪혀 갖가지 사건이 빚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아주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는 건 루이만이 아니다. 집안일만 할 수 있다고 여긴 엄마의 소극성, 자수성가한 아빠의 고루한 가치관을 바꾸어나가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더한 보너스는 루이 한 사람으로 인해 바뀐 미용실 사람들의 삶이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일들 앞에서 루이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삶을 사랑하게 된다. 이보다 더한 경험의 가치가 어디 있을까. 경험은 하는 것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가치가 있다고 했다. 루이는 일주일 간의 인턴십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학교를 빼먹고도 미용실에 갈 지경에 이른다. 다행히도 루이의 재능을 알아본 미용실 식구들도 놀라워했지만 그런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 앞에 가장 경이로운 사람은 바로 루이 자신이다. 취미도 능력도, 별다르게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한 자신이 그런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발견인가.
나는 때때로 아이가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도 중학생 때 그랬던가 싶으면서도 왜 그렇게나 많은 직업 중에서 하고 싶은 게 없을까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직업이라는 경계를 너무 좁게 두르고 그 안에서 복닥거리며 갇혀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적성이나 능력은 무시한 채 그저 남의 이목과 사회적 평가로 진로를 결정하려는 건 아닌지. 저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해보지 않은 채 그저 다른 애벌레들이 기를 쓰고 올라가니까 무작정 따라 올라가는 애벌레들의 탑과 다르지 않은 게 우리네 교육현실 같다. 진로를 먼저 결정하고 거기에 맞춰 적절한 코스를 밟아 배우고 닦아가는 길을 택한다는 다른 나라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고 그럴 수밖에 없는 제도 속에 아이들이 갇혀있다.
루이의 인턴십부터 우여곡절을 겪고, 10년 후의 일로 결말에 이른다. 10년 후의 장밋빛 찬란한 루이의 모습과 성과는 가히 놀랍다. 이 부분은 상당히 희망적이고 진취적이다. 하지만 너무 승승장구한 것처럼 그려져 있어 자칫 성급한 결정이나 꿈의 실현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너무 개방적이라 우리 청소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기야 이것도 규범에 매여있는 나의 노파심일런지 모른다. 큰딸에게(중2) 먼저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인데 어떻게 읽었는지 묻지 않았다.
이 책의 장점은 개성적인 인물들의 독특한 삶과 모습이 하나하나 그려진다는 점이다.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풀처럼 자력으로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을 보며 루이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터득해간다. 그들은 모두 하나씩의 아픔을 갖고 있었고 생의 한복판에 나와서는 그런 것들을 진한 화장으로 가리고 산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가 겉으로 보는 모습은 얼마나 무지한 이해심을 초래하는지. 사람이 사람을 깊이 이해하게 된 게 루이가 인턴십에서 얻은 최고의 소득이라고 보인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재산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가슴 한 가운데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네 생이 그리는 무늬는 한 가지일 수가 없다는 사실 또한 평범한 말이지만 잊기가 쉽다.
다소 신파적인 글귀라면 아래와 같은 것인데 나쁘진 않다. 내성적인 루이가 내내 고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정의하는 이 아이는 충분히 의젓하고 사랑스럽다. "인생은 불행만은 아니다. 인생이란, 꿈이고, 욕망이고, 열정이고, 사명감이요......" "인생은 소망하는 것이기도 해요. 제가 소망하는 것은 ...... 아빠!" 서로를 이해하게 된 아빠와 루이 또한 필연이다. 끈끈한 가족애는 그런 것이다.
부모는 특히 아빠의 존재는 가장 든든한 정신적 지원자의 역할이다. 근사한 청년이 된 루이의 머리속에서는 작은 나사 하나가 내내 돌아가고 앞만 보고 달리면 될 것 같은 고속도로가 놓여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만 이 책의 결말은 그렇게 희망적이다. 게다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예를 들어 교장선생님)을 잊지 않으려는 루이는 얼마나 미더운가.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려보는 미래의 참 좋은 모습이다.
나는 지금 루이 같이 청소년의 시기를 힘들게 지내고 있는 딸의 감정을 최대한 받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하느라 부쩍 짜증을 내는 날이면 다독여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인내심은 부모가, 어른이 먼저 발휘해야할 것 같다. 노력하자.